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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팅 세션

제 9회 테이스팅 세션 - 부르고뉴 돌아보기

와인비전 2013. 4. 17. 15:32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석달 전부터 테이스팅 세션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한 사람이 두 달에 걸쳐 매달 한 가지씩 새로운 주제로 모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선택한 두 가지의 주제로 두 달 동안 모임의 주제를 낼 수 있는 겁니다. 

첫 달에는 칠레 프리미엄 와인을 돌아봤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와인이라는 것은 어떤 맛일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모여진 칠레 와인들은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했답니다. 

두 번째 달에는 오크 친화력이 좋은 샤도네이를 나라별로 마셔봤었죠. 책으로만 배웠던 샤도네이의 오크 친화력과 양조자들이 만들어 낸 개성있고, 다양한 모습에 역시나 감탄을 금치 못했었구요. 

이처럼 평소에 하나, 둘씩 개별적으로 마셔보는 와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비교하며 마셔 보면 그간 깨닫지 못했던 점들이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이러는 와중에 반가운 주제가 닥친 거죠. 시음 순서도 아주 기막힙니다. 진행자의 재치가 돋보이는 시음 순서. 주제를 정하는 사람이나 정해진 주제로 시음 순서를 정하는 사람이나 재밌는 시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에르브 케를랑(Herve Kerlann)의 알리고떼(Aligote). 프랑스 부르고뉴의 꼬뜨 도르. 그 중에서도 꼬뜨 드 본은 세계적인 화이트 와인의 명산지라고 불린답니다. 그 중 알리고떼 포도 품종입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순간 당황했습니다. ‘헉! 이거 혹시 동네 이름 아냐?’하는 순간적인 당황. 프랑스에서는 품종 이름을 레이블에 명시하지 않잖아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이렇게 슬쩍 한 번 틀어지면 매우 당황하게 됩니다. 


화이트 와인은 단순하고, 상큼한 시트러스류의 향이 나는 청량한 스타일이 좋다고 했다가도 오크 숙성한 바닐라, 토스트 향이 나는 바디가 큰 와인이 보다 좋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스타일이든 간에 나름의 모습으로 뚜렷한 캐릭터와 여러 요소들이 조화롭게 균형감 있게 잘 어울리면 그것 자체 훌륭한 와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리고떼는 청량하고 산뜻한 느낌의 와인입니다. 살짝 바닐라 향이 느껴지지만 과하지 않았고요. 오히려 이런 향이 날카로운 산도를 둥글려 주는 듯한 효과를 준 듯 했고, 덕분에 여운도 가볍게 날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답니다.

작년 여름은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인 킴 크로포드를 주로 마셨는데 올 여름에는 알리고떼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쟁여두고 마실 와인의 선택 기준에서 가격 경쟁력이 갖는 비중은 상당하지요. 작년에 킴 크로포드 백화점 세일가 20,000 원. 올해 이 와인의 백화점 세일가 17, 500원.


그리고 알리고떼와 성격이 완전히 다른 뫼르소 - 즈느브리에르 프리미에 크뤼(Meursault-Genevrieren Premier Cru)입니다. 와인 모임 중에 ‘프랑스 와인 레이블 읽기.’ 라는 소모임도 있던데 한 달에 한 번 테이스팅 세션 시음기 쓸 때마다 그 모임에 나가야 하는지 심히 고민 중입니다. 지역은 알리고떼와 같은 꼬뜨 드 본. 하지만 품종은 샤도네이 입니다.


와인의 점수를 주면서 살짝 논란이 있었습니다. 처음 마셨던 알리고떼의 평균 점수는 88.9점. 그리고 뫼르소는 89.7점. 알리고떼가 처음 등장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알리고떼에 91점. 뫼르소에는 89점. 알리고떼가 주로 과일 캐릭터를 지녔다면 뫼르소-즈느브리에르는 과일 캐릭터 보다는 숙성된 3차향. 뻑뻑하고 단단한 Dry함과 아몬드 같은 견과류의 향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취향의 반영과 제 경우 주로 어떤 상황에서 화이트 와인을 마시느냐에 대한 습관이 크게 반영됐다고도 생각이 듭니다. 나른하고, 무료한 여름 날 반바지에 삼디다스 슬리퍼 끌고, 차갑게 보관된 화이트 와인 하나 따서 더위나 날려야겠다라는 심정으로 뽕! 따서 훌렁 마셔버릴 와인은 아니랍니다. 가격은 둘째치고, 첫 맛에 유쾌한 와인은 아니었다는거죠. 

위의 생각은 제가 화이트 와인을 찾을 때의 모습입니다. 뫼르소-즈느브리에르는 여름날이어도 반바지에 삼디다스 말구요, 그래도 옷은 좀 입고 좋은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한 모금 마시고, 목 넘김 후에 피니시도 섬세하게 느껴가면서 마셔야 가치가 살아날 그런 와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 중에 쇼비뇽 블랑을 좋아해서 화이트 와인은 쇼비뇽 블랑만 고집하는 친구가 있는데 샤도네이는 샴페인으로 말고는 마시게 되지 않더라는 그 친구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게를 쪄서 함께 마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분 좋게 개성이 다른 화이트 와인 두 잔으로 시작한 후 조금 요상한 레드 와인이 등장. 진한 색상과 자두, 체리 등의 붉은 과일향에 부드러운 탄닌. 좀 농밀한 느낌의 레드 와인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카보닉 마세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와인 같다는 의견과 함께 갑자기 “그럼 보졸레?" 하는 생각의 전환이..."그럼 혹시 이것은 보졸레 크뤼의 10개 마을 중 하나?" 하면서 의견이 엇갈려 갔었죠.


홀짝거리면서 조금씩 맛을 보다가도 역시나 뭔가 특이한 느낌이었단 말이지요. 저는 혹시 쉬라나 그루나슈 정도가 아닐까 했었지요. 테이스팅 끝까지 유지되는 비밀 때문에 계속해서 이 녀석은 무엇인가를 고민했어야 했답니다. 후에 나오는 와인들과도 계속 비교하면서 말이지요. 무엇과 비교해도 혼자 튀던 이 와인은 스페인 알만사 지역의 와인임이 드러났습니다. 이 날 테이스팅 했던 녀석과는 전혀 다른 품종, 다른 지역의 미운 오리새끼였고, 평점은 89.3점.


네 번째 와인은 부르고뉴 루즈. 이 와인은 주제를 정하신 멤버의 개인 소장품을 기부하신 것이랍니다. 매우 독특한 와인이라고 하셨지요. 수령이 오래 된 나무에서 생산된 포도로만 만든 와인이라고 했는데 이 날은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듯도 합니다. 평점은 86.6점. 바로 전에 마셨던 와인의 진한 풍미에 가려져서 이 여리한 피노 누아가 제 맛을 드러내지 못한 것도 같구요. 기부하신 분께서 매우 안타까워하셨건 기억이 스멀스멀 납니다.


그래도 멤버들은 피노 누아는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도 부르고뉴 피노 누아는 맞는 듯 하나 문득 오버랩 되는 늙은 샹볼 뮈지니의 추억. 어느 사이엔가 제겐 기운 빠진 부르고뉴 와인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샹볼 뮈지니. 저는 오픈해 두고 오래 된 피노 누아 같다는 의견을 냈고, 이어 누군가는 "이렇게 힘없는 피노 누아도 있나요?" 이러시길래. 진정 비실거리는 피노 누아를 소개 드려야겠다는 의욕이 불끈 들더군요. 


자, 여기까지 총 네 가지의 와인의 시음이 끝났지요. 그럼 나름대로 오늘의 주제는 무엇이냐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해지기 마련입니다. 준비된 와인의 반 정도를 마셨으니 슬슬 가닥을 잡아가야 하는데 말이지요. 화이트 와인 두 개도 성격이 완전 다르고, 뒤이은 레드 와인 두 개도 성격이 완전 달랐습니다. 그런데 재밌었던 것은 이유는 조금 이상했지만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었단 말이지요. 

첫 번째 와인 상큼하고 가볍고 발랄한 느낌으로 대개 샤블리를 점쳤답니다. 두 번째 와인은 부르고뉴 샤도네로 유추해내고 제법 의견이 좁아졌더랬죠. 그리고 재밌는 세 번째는 카보닉 마세레이션이라는 의견도 나왔겠다. 그럼 보졸레의 가메로 가보기로 잠정 결정. 네 번째는 힘없는 피노 누아. 저 역시도 어차피 지난 시간에 부쇼네였던 샤도네도 나왔으니 이것은 꺾인 피노 누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르고뉴 피노 누아로 결정. 제 생각의 방향은 부르고뉴! 멤버들의 생각도 부르고뉴로 잠정 합의. 이 날의 주제는 부르고뉴로 잠정적 합의를 해 두자는 의견에 이제는 진행자도 좀 더 자세한 정보가 나와 주기를 원하는 눈치입니다.


뉘-생-조르쥬. 체리와 딸기 같은 붉은 과일류의 향과 부드러운 바닐라 향도 감돌고, 살짝 스파이시한 향도 감도는 산도도 좋고, 부드러운 탄닌이 입안에서 풍성하게 느껴지는 농밀한 풍미가 좋았지요. 살짝 어린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것 같다는 의견이 대다수. 평점은 89.8. 저는 개인적으로 93점을 줬습니다.


Nuit-Saint-Georges는 개인적으로 사연이 많은 와인이기도 합니다. 이름 때문에 생긴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억인데 말이지요. 

첫 번째. Nuit-Saint-Georges 를 한글로 옮기다가 '뉘-세인트-조지'로 옮겼단 말입니다. 후에 제 한글 표기를 보셨는지 못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는 와인을 공부하는 사람이 레이블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아주 잘 들리게 "뉘-생-조르쥬"라고 똑똑히 발음을 해주셨답니다. 제 생각엔 분명히 제 한글 표기를 보셨고(내가 혹시 틀렸을까봐 상당히, 마구마구 흘려썼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부끄러울까봐 일부러 수업 중에 똑똑히 발음해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몰래 지우고 저도 똑똑히 두꺼운 글씨로, '뉘-생-조르쥬'라고 고쳐 써 놨지요.

두 번째. 이렇게 신경 쓰는 이름인데 모 와인샵에서 이 와인을 찾으니 판매 사원이 매우 또박또박하게 "아! '쌩조지'요?" 이러는데 당시 선생님의 말씀이 전광석화 같이 지나더군요. 역시나 선생님의 말씀이 맞아요. 적어도 레이블을 제대로 읽을 줄은 알아야 하더군요. 이후 선생님께 배운대로 '뉘-생-조르류'를 유연한 혀굴림을 동원해 이야기 해도 그녀의 복식호흡을 동반한 듯한 '쌩조지'의 파워 앞에서 저는 굴복할 수 밖에 없었지만 말입니다. 

후에 그녀가 '쌩조지, 쌩조지' 하며 발음했던 그 녀석은 불행하게도 제가 화이트 와인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수난을 겪게 됩니다. 일찌기 김춘수 님은 그의 작품 '꽃'에서 타인에서 불리어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역설하셨지요. 그의 말씀 마냥 '쌩조지'로 거칠고, 저렴하게 불리던 '뉘-생-조르쥬'는 결국 제게는 화이트 와인으로 오인되어 바닷가 남쪽 나라에 생각지도 않은 황당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답니다. 그는 초고추장으로 버물여졌던 서대회 무침과 최후를 함께 했어요. 

세 번째. '뉘-생-조르쥬' 못지않게 제 머릿속에 각인된 이름 하나. 'Geverey Chambertin'. '쥬브레 샹베르탱'입니다. 영화 '카운트다운'에서 조폭 넘버 3 정도 되는 남자가 전도연을 유혹하려 허세를 잔뜩 부리는데 그 때 그 배우의 대사, "나폴레옹이 즐겨 마셨던 와인이죠. 고독한 영웅의 술 '쥬브레 샹베르탱'".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그 이름이 각인이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그러다가 반가운 친구가 아끼는 와인이라며 고이고이 시골로 가져 온 '뉘-생-조르쥬'를 마시면서 계속 '쥬브레 샹베르탱'이라고 지칭했단 말이지요. 머리와 입이 따로 노는 분열 증세가 발생. 결과적으로 '뉘-생-조르쥬'가 제게는 '쌩조지' 이후 '쥬브레 샹베르탱'으로 명명되는 참으로 불운한 와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도 맛으로는 본연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어요. '쌩조지'처럼 거칠고 저렴하지도 않았고, 허세를 부리는 넘버 3의 '쥬브레 샹베르탱'처럼 공허한 맛도 아니었단 말씀. 당시의 제 테이스팅 노트에는, '과일향을 압도하지 않는 정도의 토스트, 버터향. 붉은 과일류의 향과 더불어 허브, 고기향 등이 어울어지는 꽉찬 풍미. 부드러운 탄닌과 기분 좋은 산도의 좋은 발란스. 적절한 알콜. 다소 긴 여운.' 이런 인상으로 남았답니다.


부르고뉴 파스-뚜-그랭. 시음 순서가 얼마나 기막힌지 말이지요. 뭔가 여리여리한 녀석이 나왔다 싶었습니다. 평점 86.8. 저는 88점을 주었지요. 한 모금 마셨을 때 느껴지는 인상이 좀 약했답니다. 신선한 맛은 있지만 덜 여문 느낌?


멤버 한 분의 시음 노트에는 아주 과감하게 '색만 예뻤다'라는 메모와 함께 82점이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Bourgogne Passe Tout Grains' 은 양조 과정에서 피노 누아를 최소 1/3, 그리고 나머지는 가메를 블렌딩 해서 만듭니다. 보통 색의 농도는 진하고, 탄닌은 두드러지지 않으며 경쾌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라고 합니다. 멤버들의 시음 노트를 보면서 인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고 점수가 낮았던 이유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중입니다.


물랭-아-방. 보졸레 지방의 100% 가메로 만든 와인입니다. 시음 순서가 기막혔단 말씀의 의미를 알아채셨는지 말입니다. 첫 번째로 마셨던 와인을 카보닉 마세레이션을 운운하며 보졸레로 오인하면서 레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성격이 완전하게 다른 부르고뉴 루즈로 옮겨갔죠. 다음에는 풍미가 좋았던 뉘-생-조르쥬로 간 후에 피노 누아와 가메가 블렌딩 된 파세-뚜-그랭. 그리고 보졸레 가메 100%로 만든 와인이 나왔다는 겁니다. 진행자는 시음자들이 스페인 알만사 와인을 독특한 양조기법을 근거로 해서 보졸레로 오인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당시 짱구를 한 번 돌렸죠.

1그룹 : 성격이 다른 화이트 와인 두 개. 

2그룹 : 이상한 와인을 하나 넣어서 주제를 교란 시키려는 의도가 보임.

3그룹 : 풍미가 약한 와인과 풍미가 강한 와인을 연달아 시음하게 하면서 같은 지역이지만 양조 방법의 차이. 혹은 품종은 같지만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의 차이 등 주제에 접근시키려 하는 노력.

4그룹 : 이쯤에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진 것들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5그룹 : 진행자가 힌트를 주셨던 것과 같이 정점을 찍을, 주제의 특징을 오롯이 갖고 있는 와인이 나오면서 멤버들의 입에서 "와우!" 소리가 나게 할 것이다. 

뭐... 요런 짱구. 

혹시 여러분들 중에 "결과를 알고 난 이후에 괜히 끼워 맞추기 하는 거 아니야?" 요렇게 의심하실 것 같아서 저는 정말로 한 점의 꼼수가 없음을 밝히며 증거 사진을 투척합니다.


들쑥날쑥한 와인잔이 보이시나요? 이것은 바로 제가 나름 뭔가 공통적인 성격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 것들을 정리 해 둔 것이랍니다. 결과는 역시나 허무맹랑한 유추였음이 밝혀졌습니다만.......

지금 저 사진을 보니 제가 짝을 맞춰 놓은 것은,

1그룹 : 화이트.

2그룹 : 이상한 와인 하나.

3그룹 : 여리여리한 와인 둘 .

4그룹 : 풍미 진한 와인 둘.

아직 그룹은 아니지만 사진의 마지막 잔 : 인상 깊은 와인. 

의미없는 그루핑.


제가 제대로 그루핑을 했다면 '파스-뚜-그랭'과 '물랭-아-방'을 한 선으로 묶어 놓아야 했을겁니다. 평점 91.6점을 받았습니다.


포마르 프르미에 크뤼 레 페즈롤(Pommard 1er Cru Les Pezerolles). 와인잔 사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인상 깊은 아이였습니다. 이 와인은 목 넘김 이후 여운이 굉장히 깁니다. 인삼 먹고 자란 포도로 만들었을까 생각할 정도로 말이지요. 사실은 석회질 진흙을 먹고 자란 포도라는군요. 포마르 입니다. 평점 93.1점이었고, 저는 94점을 줬습니다.


전체적인 의견은 실크같은 우아한 감촉과 점잖은 강도. 은은하고 풍성한 풍미. 한마디로 섬세하고 우아하다는 의견의 일색. 사실 뭔가가 부족한 와인의 경우는 오히려 이런저런 이야기 거리가 많은데 반대로 흠잡을 것이 없는 와인은 어휘력의 한계를 통탄하면서 말이 짧아지기 마련이지요. 게다가 이전 와인들이 앞뒤로 그 평가의 결과가 널을 뛰는 상황이라면 같은 평가의 기준으로 뭐라 할 말이 없어집니다.


이제 마지막 와인. 진행자께서 오늘 시음 와인 중에 쉽게 마시지 못할 녀석이 하나 있다고 해서 사실 계속 기대하고 긴장을 했지요. 다들 맨 처음이 아니면 맨 마지막일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포마르 이후 한 녀석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이미 포마르는 맛을 보았고, 뒤 이은 녀석이 포마르 보다 나쁠 경우 최고의 와인은 포마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맛을 보았습니다. 포마르를 마시고 할 말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마지막 와인은......


DRC 그랑 에세조. 평점 98. 


제가 기억하는 것은, "이건 또 뭐야?" 그리고 테이스팅 세션이 끝난 다음 날 결제 금액이었습니다. 저는 시음이 끝난 후 두 번 더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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