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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만드는 데 쓰이는 포도 품종 중 대다수가 바로 유럽 포도나무라고 알려진 비티스 비니페라 종입니다. 이 품종은 본디 중동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난 수천 년 동안 경작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포도 품종으로 발전했습니다. 비티스 비니페라 품종은 오늘날 포도가 자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퍼져 있습니다. 새로운 포도원에 포도나무를 심을 때는 언제나 모체나무로부터 잘라낸 가지를 사용하지 절대로 종자를 새로 뿌리지 않습니다. 포도 종자를 심어서 키울 경우 품종의 특성대로 자라지 않고 각각의 종자가 완전히 새로운 품종으로 자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포도씨가 발아하여 제대로 자라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대다수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와인을 만들 수 있는 다른 비티스 속에는 비티스 라브루스카(..
중앙아시아와 중동 일대에 와인 문화가 퍼졌지만 이를 지중해 연안의 국가와 민족에게 널리 퍼뜨린 것은 페니키아인(Phoenicians)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레바논에 시돈(Sidon)과 티레(Tyre), 비블로스(Byblos) 등의 도시를 세우고 지중해 연안에 식민도시를 여럿 거느렸던 페니키아인들은 레바논을 비롯하여 이집트, 알제리아, 튀니지아, 그리스, 이태리,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 등지로 와인을 수출했죠. 이들은 와인을 수출할 때 더운 날씨에 변질되지 않도록 송진이 들어간 올리브 오일을 와인 위에 부었는데 그 효과는 상당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기원전 750년 경에 침몰한 페니키아 배를 인양했을 때 와인이 든 항아리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든 와인이 여전히 상태가 좋았다는군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
비티스 속의 일원인 포도나무는 본디 햇빛을 찾아서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적당한 가지를 발견하면 덩굴손을 뻗어 거기에 달라 붙는 성질이 있습니다. 포도나무의 유일한 목표는 달콤한 열매를 맺어 새들을 유인한 후, 그들이 씨앗을 다른 곳으로 운반하여 발아되게 하는 것이지요. 다른 나무와 햇빛을 두고 경쟁하면서 꽤 길게 뻗어나간 포도 덩굴은 번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엄청난 속도로 자라는 성향이 있습니다. 만일 울창한 삼림지역이라면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위해 다른 나무와 치열한 경쟁을 벌어야 하므로 넓고 깊은 뿌리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모든 식물은 자연적으로 종자가 들어있는 열매를 생산합니다. 만약 식물의 생존에 전혀 위협이 없다면 균형 잡힌 상태로 자라서 번식에 필요한 열매를 맺고 식물의 크..
고고학자들은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후기 신석기 시대나 초기 청동기 시대부터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부터 와인을 만들어 왔을 것이라고 보는거죠. 처음 와인을 만든 곳은 코카서스와 중동 사이의 그루지아(Georgia) 지방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와인을 양조할 때 쓰던 단지가 발굴되었는데, 그 안에 남은 흔적의 연도를 측정해보니 기원전 8천년 전의 것이더랍니다. 고대 그루지아인들은 땅 속에 항아리를 묻고 수확한 포도를 저장했는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며 포도가 와인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는군요. 그후 그루지아인들은 본격적으로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했고, 오늘 날에도 이런 방식으로 와인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루지아에서 발견(?)된 와인 양조법은..
하지만 슬프게도 이렇게 새로이 생겨난 해결책은 재배자들을 경제적 어려움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와인 생산량이 넘쳐나면서 와인 가격 폭락 사태를 몰고 왔습니다. 1907년 나본(Narbonne)에서, 1911년에는 샹파뉴에서 소요가 일어나 재배자들이 원가 이하로 팔리고 있던 와인을 길거리에 쏟아 붓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와인 생산 증대로 야기된 시장 붕괴는 곧장 1920년대 중반 아펠라시옹 콩트롤레(Appellation côntrolée) 시스템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몇몇 포도원은 다른 재배자들이 나무를 뽑고 접목 나무를 새로 심은 후에도 수십 년간 접목하지 않은 고유의 나무를 어렵사리 지키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
단순히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아니라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와인의 기원은 언제일까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와인에 관한 기록이 두 군데 나옵니다. 하나는 소란스런 인간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신들이 세상을 물로 쓸어버려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신들의 계획을 물의 신 엔키로부터 전해들은 우트나피시팀이 방주를 만들면서 일꾼들에게 음식과 술을 제공하는 장면에서 나오죠. 이때 우트나피시팀은 일꾼들에게 독주와 붉은 술, 흰 술을 내줬습니다. 학자들은 여기서 나오는 붉은 술은 레드 와인, 흰 술은 화이트 와인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또 하나는 영생을 찾아 헤메던 길가메시가 바닷가에서 시두리라는 여인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녀의 직업은 포도로 술을 만드는 일, 즉 와인..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던가요? 해답은 처음 문제를 야기한 곳, 즉 북미 지방에 있었습니다. 1845년 영국 켄트(Kent) 마게이트(Margate)에 있는 온실에서 터커(Tucker)씨가 최초로 새로운 곰팡이 질병인 흰가루병을 발견한 후, 오이디움 투케리(Oidium tuckerri)라고 불린 이 질병(그 이후 언시뉼라 네카터(Uncinula necator)로 이름이 바뀌었다)은 곧 유럽 전역으로 퍼져 엄청난 규모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단순히 유황을 뿌리기만 하면 이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전까지 몇몇 재배자들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미국 자생 품종이나 프랑스-아메리칸 이종 품종을 심어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이 나무들로는 훌륭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없었지만 필록세라의 공격으..
1. 인류는 언제부터 와인을 마시게 되었을까요? 아주 오래 전에 와인을 마시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겁니다. 인류가 와인을 마시게 된 계기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설이 전해옵니다. 하나는 원숭이 전설. 포도 열매가 땅에 떨어진 후 자연 발효되어 와인이 되었는데, 그 와인을 원숭이가 먹었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원숭이를 본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땅에 고인 와인을 맛봤죠. 와인의 맛과 향, 그리고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즐거운 기운에 빠진 인간은 스스로 와인을 빚어 마시게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본 것을 인간은 보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인간도 와인의 향에 이끌려 맛을 보지 않았을까요? 결국 와인을 먼저 마셔본 것이 인간이었을지 아니면 원숭이였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일 겁니다. 또 ..
필록세라를 없애고자 온갖 종류의 수단이 다 동원되었습니다. 하지만 없앨 방법을 찾는 것은 길고, 지루하고, 무엇보다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토양에 이황화탄소를 주입하였다가 오히려 포도원 일꾼들에게 해를 끼쳤고, 포도나무 아래에 살아있는 두꺼비를 묻는 등 기상천외한 민간요법도 횡행했습니다. 그 중에 실제로 성공적인 방법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포도원을 침수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에 강이나 운하 같은 물이 있거나, 포도원 지면이 비교적 평평한 곳에서만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중부에 거대한 운하를 건설하자는 계획이 제안되었지만 엄청난 비용으로 인해 포기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곳곳에는 포도원 주변에 사람이나 동물의 침입을 막을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낮은..
필록세라가 유럽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은 1863년이었지만 그 목격 장소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영국 런던의 고급 주거지인 해머스미스에서 미국으로부터 관상용 포도나무를 수입하면서 필록세라가 유입되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 아비뇽 근처의 푸조(Pujaut)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던 한 와인상이 ‘미국의 친구’로부터 받은 엠 카를(M. Carle)이라는 묘목에 붙어서 따라 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861년에 심은 나무들은 처음에는 잘 자랐지만 2년 후 1863년이 되자 몇몇 나무에 벌레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그러한 문제를 야기했는지 아무도 몰랐죠. 다음 해에 더 많은 나무가 공격을 받았고 최초의 공격 이후 5년 사이에 프랑스 남부의 수많은 포도원들이 이 기생충의 공격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