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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박한 방법으로 절정의 맛을 내는 키조개 관자를 먹는 방법에 대하여 본문

백경화의 미식기행

가장 소박한 방법으로 절정의 맛을 내는 키조개 관자를 먹는 방법에 대하여

와인비전 2014. 6. 11. 17:33

해산물을 좋아하는 제게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명제는 잠언과도 같습니다. 5월이 되면 서해 간월도에 가서 바지락 밥을 먹어야 하고요, 장흥에 가서 키조개 관자를 먹어야 합니다. 보통 5월 중순이면 시작이 되는 자주 가는 집의 바지락 밥의 경우 올해는 바지락의 생산량이 많지 않아 언제부터 시작이 될지 모른다는 주인장의 청천벽력같은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갯벌이 망가진 탓이다. 그렇지 않다면 바지락의 생산량이 갑자기 떨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이기심이 결국 인간의 미식 생태를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애달픈 마음을 주체 할 수 없는 중 "남쪽으로 내려가면 키조개가 있지." 올해는 일단 키조개만으로 위로를 삼자했습니다.

매년 5월이면 키조개 축제로 들썩하지만 축제 12년 째를 맞는 올해는 축제를 10월로 연기를 했습니다. 이유는 다 아실 터. 장흥에서는 장흥의 특산물 세 가지를 엮어 장흥 삼합이라는 이름의 먹거리를 내세우는데 이는 장흥의 쇠고기, 표고 버섯, 키조개 관자 구이입니다. 장흥의 어느 식당을 들어가든 이와 같은 이름으로 세 가지의 식재료를 묶어 파는 메뉴가 있으니 경험삼아 맛을 본 후,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세 가지 중 한 가지에 집중해 볼 수도 있습니다. 신선한 재료 외에 특별한 조리법이 필요한 아니니 직접 재료를 구입해서 조리해 먹는 것이 넉넉하고 여유롭게 맛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추천드리고 싶네요.


매우 불친절하고 성의없는 조리법일지는 모르겠으나 장흥삼합을 먹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불에 굽기 입니다. 키조개 관자, 장흥 소고기, 장흥 표고 버섯을 정말 심플하게 구워서 세 가지를 함께 기름소금장에 찍어 먹는 방법이지요. 이 세가지가 한꺼번에 입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성되는 특별한 시너지가 있었으면 참 좋겠으나 불행하게도 그런 건 없습니다.

심지어 구워낸 키조개 관자는 풍미가 세 중 가장 풍미가 진한 쇠고기에 밀리고, 향긋한 여운이 길게 남는 표고 버섯의 향에 밀려 존재의 가치에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는 이 중 끝까지 질리지 않고 먹게 되는 것은 키조개 관자라는 점입니다. 풍미가 진한 쇠고기는  삼합 중 가장 일찍 제껴지게 되고, 여운이 긴 표고 버섯도 진한 향에 질려 곧 버려지고. 끝까지 젓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각하면서도 쫄깃한 식감과 어금니에서 한 번 씹히면서 나오는 신선한 육즙. 그리고 섬세하게 베어나오는 감칠맛을 가진 특유의 향이 끝까지 젓가락을 움직이게 합니다. 그래서 키조개만 다시 굽게 만들게 된답니다. 이것이 5월이 되면 장흥을 가게 하고 그곳에서 키조개 관자를 먹게 하는 이유랍니다. 장흥삼합은 입맛을 돌게 하는 에피타이저. 그리고 키조개 관자 구이는 본 게임이지요.



본 게임을 더욱 즐겁게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와인도 빠질 수 없습니다. 까밀 브룬의 드라이 리슬링. 미네랄리티와 페트롤 향을 느낄 수 있는 산도 좋은 이 리슬링은 감칠맛 나는 구운 키조개 관자를 더욱 즐겁게 즐길 수 있게 도와줍니다. 사각거리면서도 쫀득거리는 좀처럼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이질적인 식감을 갖고 있는 구운 키조개 관자가 감칠맛나는 단맛을 내며, 부드럽고 신선한 향을 입 안으로 흘려 낼 때는 오롯이 그 향을 즐겨 주세요. 그리고 이후에 찝찔한 조개 특유의 향이 남아 있을 때 상큼한 산도를 지닌 와인을 흘려내듯 입에 담아 주시면 짭쪼레한 미네랄리티와 리슬링 특유의 페트롤 향이 묘하게 어우러져 꽤 괜찮은 이음이 이루어집니다.


장흥삼합의 응용 버전입니다. 낙지삼합이라고 불리는데 산낙지와 키조개 관자를 회로 먹다가 서서히 올라오는 열기에 미나리와 양파 등이 익으면서 생기는 채수로 가장 밑에 깔려 있는 양념된 돼지고기를 볶아서 먹는 음식입니다. 산낙지 회와 제육 볶음은 흔히 먹는 방법이니 이는 둘째로 칩시다. 위에서 소개한 장흥삼합이 세 가지를 함께 먹는 방법으로 별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한 것에 비해 이 음식은 한 데 모여있으나, 먹는 방법은 각개전투입니다. 산낙지는 기름소금장에, 키조개 관자는 젓갈향과 양념 맛이 강하지 않은(?) 묵은지와 함께 먹습니다.


젓갈 맛과 양념이 강하지 않은, 식감이 살아있는 묵은지와 함께 먹는 신선한 키조개 관자 회는 서로의 사각거리는 식감과 감칠맛이 최정절을 이루어내는 맛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언뜻 김치 때문에 키조개 관자의 맛이 묻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도 하지만 마치 먹는 사람의 이런 걱정을 미리 알고 계산한 듯 보기와는 다른 순한 맛의 김치는 자기의 역할을 오버해서 나대지 않습니다. 그냥 먹으면 밍밍할 수 있는 관자에 맛의 방점을 찍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 냅니다. 그리고 막걸리를 부릅니다. 굳이 삼합이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도 훌륭한 키조개 관자를 먹는 방법이었습니다.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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