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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꽃으로 化하다 4편 – 당신은 첫인상과 달라요. 콘테 디 카스텔보르고 바르바레스코 산토 스테파노(Conte di Castelborgo Barbaresco Santo Stefano)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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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꽃으로 化하다 4편 – 당신은 첫인상과 달라요. 콘테 디 카스텔보르고 바르바레스코 산토 스테파노(Conte di Castelborgo Barbaresco Santo Stefano)

와인비전 2013. 4. 28. 11:55


절화로 판매되는 튤립은 수분이 부족하면 줄기가 말랑말랑해지고 힘이 없어서 플로럴 폼에 꽂아 작업하기도 힘들고, 핸드 타이드 부케로 작업을 하기도 힘이 듭니다. 방법으로는 튤립의 줄기가 단단하게 힘이 생겨서 본 모습이 나올 것을 예상하며 자리를 잡아서 모양을 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튤립이란 녀석은 물을 한껏 먹고 나면 줄기가 하룻밤 사이에 보통 손가락 두 마디 정도는 길어지니 처음부터 자라날 줄기의 길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 꽃의 위치를 잡으면 튤립만 멀뚱해져 푼수같은 모양새가 되니 여간 까다로운 소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완성된 결과물은 전체적인 모양새 자체가 좀 엉성하지요. 

하지만 다음 날에는 전날 엉성하던 모양과는 전혀 다른 본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 모습은 수분을 가득 담아 줄기에는 힘이 넘치고, 꼿꼿하며, 꽃잎은 탄력적인데다가, 싱그러운 향내마저 뿜어내는 모습이지요.

블루 치즈 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좋아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음식과 곁들여 마시기 위해 선택한 와인은 바르바레스코였습니다. 높은 산도와 강한 탄닌, 섬세한 향과 맑고 가벼운 질감을 예상하고 기쁜 마음으로 오픈했습니다. 코르크의 오픈 직후 흘러나오는 향은 잘 익은 과일 향, 초콜릿 향, 나무 냄새 기타 등등으로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요. 

그리고 한 모금 마셨을 때에는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기대했던 산미와 탄닌은 어디론가 다 숨어버린데다가 이거 혹시 멜롯인가 싶을 정도의 잘 익은 과일의 인상만 강할 뿐 네비올로 단일 품종으로 만드는 바르바레스코도 메이커마다 성격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살짝 민망한 상황이었지요. 

그러다가 한 20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불꽃놀이처럼 주책스럽게 튀어 나오던 과일의 단 향들은 얌전하게 다 가라앉아 매우 얌전하고 침착하게 변해 있었고, 다시 한 모금을 마셔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산미와 탄닌이 와인의 골격을 새롭게 잡아 주듯이 와인에 힘을 줍니다. 혀 뒤에서 침샘을 자극하는 산미는 단 향에 묻혀 힘없이 풀어진 듯한 와인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 같았고, 가볍고 부드러운 질감 속에 숨겨져 있던 탄닌은 서서히 혀와 잇몸에 짜르르한 날카로움으로 입 안을 조여옵니다. 그러면서 이럴 줄은 몰랐지 하면서 드러나는 스파이시. 그리고 뒤를 따라 오는 잔잔한 허브 향기, 나무 냄새 같은 것들이 단단한 느낌으로 가늘게 이어지는 듯 느껴지는데 이게 이 와인의 본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인상이 대상의 본질이 아닌 경우는 비단 꽃과 와인만은 아니겠지요?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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