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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테이스팅 세션 - 라이벌 대결, 내가 제일 잘 나가. 본문

테이스팅 세션

제 6회 테이스팅 세션 - 라이벌 대결, 내가 제일 잘 나가.

와인비전 WSET 와인비전 2013. 3. 28. 15:01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요상도 하여 자꾸자꾸 센놈을 찾고 싶어하는가 봅니다. 누가 더 세냐, 누가 더 멋지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되다가 나중에는 '종.결.자.' 라는 이름으로 마침표를 찍었나 싶으면 종결자가 또 자꾸자꾸 나타납니다. 종결이 안 되나 봅니다. 뭔 놈의 종결자가 그리도 많은지... 

슈퍼맨과 배트맨이 그들의 적과 열심히 싸우는 걸 보고나서는 생각합니다. 슈퍼맨이랑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겨? 1 대 다수와 싸워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람보와 코만도. 분명 초행길일 수풀이 우거진 정글에서 네비게이션도 없이 잘도 적의 위치를 찾아내고, 그들의 총알은 절대 떨어지지도 않지만 우리는 문득 생각합니다. 람보랑 코만도가 싸우면 누가 이겨?

라이벌 대결은 태평양 건너 뿐이 아니랍니다. 일찌기 한반도에도 있었던 남진과 나훈아. 그리고 우리의 아이돌 조상이 되시는 젝스키스와 H.O.T까지... 그리고 이런 대결은 돈도 되나 봅니다. 시리즈 영화로 돈맛 좀 본 것 같은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 vs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과 '에어리언' vs '프레데터'. 

'누가 더 센가?'에 대한 궁금증은 여러 사람들의 설왕설레를 거쳐 종결자를 찾지 못한 채 엎치락뒤치락 하기를 몇 번. 결국엔 진정한 종결자를 찾지 못하고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 마냥 애먼 시리즈의 종결로 끝을 맺었고, 후에 자랑스러운 한류 열풍의 주역인 '2ENI'은 자신감 가득 찬 얼굴로 말합니다. 니들 다 필요없어 '내가 제일 잘 나가!' (이 때는 독자 여러분 스스로 자체 BGM 시스템을 작동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때는 바야흐로 겨울이 지나 봄이 다가오려고 하는 시절. 강남구 논현동의 빌딩 한 구석에서는 일생에 한 번 쯤 센놈 찾기에 열을 올려 본 적이 있었을 열 명의 지구 용사가 모였으니, 오늘의 미션은 TESCO 와인 VS 非 TESCO 와인. (표기 또한 한국어와 한문과 영어의 오묘한 긴장..) 


자,.. 선수들 입장합니다. 편의상 화면 왼쪽을 A 선수, 오른쪽을 B 선수라 칭합니다. 



컬러의 차이를 보면 A는 덜 노랗고, B는 더 노랗고, 향 역시도 컬러와 비슷하게 A는 약한 듯 수줍게 솔솔 피어오르는 꽃향기라면, B는 좀 더 강렬하게 뿜어내는 꽃향기. 그리고 무엇인가 깊은 향내도 갖고 있는 듯한 포스. 선뜻 내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A와는 다른 내공을 갖고 있다는 묘한 기운을 내뿜습니다. 그러면 A는 첫인상이 다냐.. 그렇다면 라이벌 대결 따위는 필요없겠지요. 

초반부터 강한 내공을 뿜는 B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드러내는 속내. 감귤류의 향이 두드러집니다. 아,.. 그러면 이 선수들은 상쾌한 시트러스 계열의 아로마를 필살기로 장착한 A와 풍부한 꽃향기, 오크 에이징에서 오는 성숙함을 필살기로 장착한 B의 대결이 되겠군요.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리한 레몬 컬러를 띈 시트러스 계열의 향내를 상큼하게 뽐내던 A는 TESCO의 2010. SOAVE. 중간 이상의 레몬 컬러로 전형적인 SOAVE의 성질인 꽃향기와 숙성된 무게감을 보여준 B는 CORTE GIARA. 둘 다 3만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으로 개성있는 필살기를 장착한 선수들이었습니다. 

당시 대결의 결과는 A는 평점 83.2 점, B는 평점 85.2점. 



자자,.. 이어지는 두 번째 라운드.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번 블라이드 테이스팅도 지구의 용사들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센놈 찾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첫째로 용사들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품종. 그리고 짝을 지어 나온 선수들 간의 차이를 알아 맞추기. 

여러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공통적인 의견은 두 선수들은 같은 품종이다. 그리고 나누어지는 두 선수들 간의 차이. 

1. 이들은 양조 방식이 다르다. 

2. 지역이 다르다.

3. 비싼 놈과 싼 놈이다. 

그리고 열외로 제 의견을 하나 덧붙인다면... '맛 없는 와인'과 '더 맛 없는 와인'이다. 죄송합니다. 변명이지만 이틀을 날밤 새고, 혓바닥의 돌기가 촘촘 솟아올라서 뭘 먹어도 쓴 맛만 났습니다. 앞으로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참전하겠습니다. 



보실까요, 여리여리한 색상(흔들리는 것은 우정 뿐이 아닙니다. 역시 자체 BGM 가동.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 '신.들.린. 우정'이 아닙니다.). 솔솔 올라오는 달큰향 산딸기 향과 기분 좋은 허브향. 둘 다 높은 산도. 깔끔하고 맑은 바디감. 이 선수들은... 피노누아. 이 대결을 기획하신 분의 말씀. 

"여러분들은 지난 달 학습의 효과로 품종은 쉽게 알아 맞히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모여 앉은 지구의 용사들은 지구에 사는 단순 생물이 아닌 학습하는 동물. 위대한 인간입니다.

자 그럼... 이제 위대한 인간, 지구 용사들은 이 두 선수가 나란히 나온 이유에 대해서 고민할 차례. 과연 이 선수들은 어떤 필살기를 가지고 서로의 대항마로 나온 것일까요? 이것을 단박에 알아맞힌다면 그것은 위대한 인간을 넘어선 초.인.류. 지구의 용사들은 겸허한 자세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더불어 답을 알려달라는 애처로운 눈빛도 발사합니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막 던집니다. 

"Old World, New World!"

전체적인 평가는 A 선수와 B 선수의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A 선수 보다는 B 선수가 강도와 여운, 복합성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들의 정체는 다음과 같이..


 

A는 뉴질랜드 헉스 베이의 SILENI Pino Noir . B는 TESCO. 말보로의 Pino Noir. 두 선수 모두 2009. 평가로는 A 선수는 평점 85점, B 선수는 86.2점. 재밌는 것은 SILENI는 꽤 유명하면서도 상도 받은 와이너리라는 점. 와인의 단편적인 기준들만 가지고 와인의 우열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와인이 있고 우리는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단,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는 와인의 종류만큼이나 많다는 것.


 

3라운드의 선수들. 2라운드와는 다르게 좀 묵직합니다.

잔을 살살 돌리면서 향이 잘 피어나기를 기다리....릴 필요도 없이 코를 찌르는 향신료의 향. 단지 몇 번 돌렸을 뿐인데 이렇게 공격적으로 냄새를 피우면서 덤벼드는 이 선수들의 호전적인 전투 의지. 그렇다면 지구 용사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미스테리한 선수들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이 선수들은 "시라! 입니다." 자,.. 이렇게 모두가 '시라'를 외칠 때 용감한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이것은 싸구려 까르미네르입니다." 그러자 선수들 못지않게 전의에 탄 제 호전적 기질을 눈치 챈 주최자께서 당황스럽게 한 말씀하십니다. "... 비슷은 합니다." 이런 반응은... 아니라는 거죠. 그럼 저는 고민에 빠집니다. 다시 한 번 라스트 펀치를 날리며 까르미네르라고 우겨 볼까? 아니면..."고뢔? 구러취? 내 아닐 줄 알았어.." 하면서 흰 수건을 던질 것인가... 그리고 이내 이성적 판단에 돌입합니다. '그래, 나의 상대는 주최자가 아니야. 어서 두 선수의 정체를 파악해야해.' 

전세를 파악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콧구멍과 혓바닥을 예리하게 다듬으며 두 선수의 면모를 심도있게 파악합니다. A 선수. 산도 좋습니다. 탄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발란스도 좋습니다. 첫 인상에서 대범하게 달려들었던 도발적인 향신료의 향들이 한 풀 꺾이고 난 후 잘 익은 붉은 과일향들이 피어납니다. B 선수. 구조감과 강도, 복합성 면에서 A 선수 보다 뛰어난 인상을 받습니다. 시간이 지나서는 탄닌이나 향들이 조금 더 둥글고 정제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싸구려 까르미네르라고 했던 말을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전투에서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흥분입니다. 상대가 나를 교란시키려는 속셈으로 덤비면서 약을 살살 올리며 잽을 날릴 때에는 상대의 리듬에 맞춰주면서 역전의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갑자기 흥분해서 "너, 이리 와.. 당장 안 왓!?" 이러면... 순식간에 다칩니다.



호전적인 선수들의 정체. A 선수, TESCO의 크로제 에르미따주. 평점 84.6. B 선수, 폴 자볼레 애네 크로제 에르미따주 레 잘레(Paul Jaboulet Aine Les Jales) 평점 87.6.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 B 선수는 그 복잡한 속내를 덤비는 향신료 향으로 연막을 친 후 결전에 임했던 것이었군요. 이 즈음에서 또 하나 얻게 되는 삶의 교훈. 첫 인상이 다가 아니다. 첫 판에 결정짓지 말아라. 된통 당하는 수가 있다.



마지막 라운드. 힘든 미션의 여정을 거쳐 예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음을 치하하려는 듯 그윽하게 풍겨나오는 향... A 선수에게서 문득 동물의 신체 대사 활동의 마지막 단계인 숙성된 향기를 맡아냈으니... 이름하여 방귀 냄새(라고 쓰지만 방구 냄새 라고 해야 언어의 맛과 향이 사나니..). 

뭐든 숙성된 향내를 방귀 냄새 하나로 귀결시키는 숨겨진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A의 본질을 파악하기에 여념이 없는 필자. 이는 분명 오래 묵힌 향. 장기 숙성이 가능한 선수들이 리스트 업 되면서 다시 상대에 대한 분석 시작. 산도, 탄닌의 조화로움. 묵직한 바디감에서 이전 선수들과의 확실한 차별화. 이어서 입 안에서 감도는 우아한 풍미와 짱짱한 구조감. 검은 과일향과 시더의 향. 다양한 향신료의 향들이 만들어 내는 농축된 향과 긴 여운. 급이 다른 선수의 출연으로 일순간 흥분의 상태가 된 지구의 용사들이 내린 결론. 

"이 선수는 메독이다." 

이 때 어디선가 엄습하는 고수의 냉정한 포스... 그 포스의 비밀은 조금 후에...



A 선수 RIOJA VEGA 그랑 리제르바 2001. 평점 90.8. B 선수 TESCO VINA MARA 그랑 리제르바 2004. 평점 88.2. 와인을 마실 때 잔에 담긴 와인의 색을 보고(흰 종이에 기울여 보고, 빛에 비춰 보고, 눈 높이로 보고 등등등..), 잔을 빙빙 돌려 향을 맡고(고개를 숙여서 코를 잔에 깊게 들이대고 숨을 훅 들이 쉬는 등.), 한 모금을 마셔보고 그 맛을 음미하고(후루룩 짭짭거리기도 하고 입 안에 넣고 우글우글 돌려보기도 하고), 목으로 넘긴 후 향의 여운의 길이도 따져 보면서 그 가치를 평가합니다. 이런 복잡하고, 오감을 집중시켜서 어렵게 내린 결론이 하나로 통합 된 순간, 엄습하는 고수의 포스는 이런 것입니다.

"스승님은 이 선수의 정체가 무엇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여유롭게 잔을 돌려보며 온화한 미소를 띈 채) 이것은 리오하."

"네? 어찌 그리 생각하시옵니까?"

"(제자들에게 더 수련해야 한다는 듯한 미소를 띄우며) 컬러. 이 정도의 숙성된 컬러가 나오려면 보르도의 경우 10년이나 15년 이상이 되는 그랑크뤼는 되어야 하느니. 그런데 이 무림의 재정 상태로 보아 그 정도의 선수가 출정 경기를 하는데는 역부족이니 이 정도의 컬러와 깊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다른 수련의 장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오랜 수련의 과정 끝에 선수를 출전시키는 리오하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


 

결론. 이미 우리 시장에 들어와 있는 거대 자본력을 앞세운 TESCO의 저렴한 가격과 쉬운 접근성, 고객의 기호를 고려한 기획 와인들. 가격이 싼 마트 와인이기에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나 혹은 거대 유통망을 가진 회사가 만든 와인이니 같은 가격 대에서는 더 좋은 품질일 것이라는 생각은 역시나 기우일 뿐이라는 사실.

여러 분야에서 센놈 찾기의 노력은 항상 있어왔지만 명확한 승자없이 항상 시리즈의 종결만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봐 온 센놈도 결국 약한놈에게서나 센놈이었다는 것. 즉, 센놈과 센놈을 붙였을 때 누가 더 센놈이냐를 다투는 것은 재미는 있으나 의미없는 일이라는 모두가 아는 불편한 진실. 세상 모든 와인이 가치있다는 생각을 가진 당신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함께 할 수 있는 와인이라면 그 어떤 와인이라도 불굴의 센놈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굳이 말로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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