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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브드맹의 와인 야사 18] 로마의 와인 산업 본문

와인 이야기

[까브드맹의 와인 야사 18] 로마의 와인 산업

와인비전 2013. 6. 25. 17:30


 카토 아저씨.


지중해를 앞마당 연못(?)으로 만들어버린 로마는 당대의 거의 모든 와인 문화를 흡수, 통합하여 발전시켰습니다. 기원전 3~4세기 무렵에는 일찌기 그리스인들이 개간해 놓았던 이탈리아 남부의 포도밭을 접수해 와인 산업의 토대를 단단히 굳혔죠. 기원전 2세기의 로마 정치가 카토(Cato)는 <농업론(De Agri Cultural)>이란 책을 쓰면서 “포도 재배는 이제 생계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가 가내 소비가 아닌 산업의 형태를 띠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후 카르타고와의 3차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리스와 발칸 반도 북쪽,이집트, 프랑스, 스페인, 소아시아 반도까지 정복한 로마는 지중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대제국의 수도인 로마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죠. 기원전 3세기 경 로마에는 불과 10만 명이 살았지만, 3백년이 지난 기원 1세기 초에는 무려 백만 명의 사람들이 로마와 인근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그 많은 사람들이 마셔야 할 와인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죠. 당시 로마인들은 매년 1억 8천만 리터의 와인을 소비했는데, 이는 당시의 모든 로마 시민들이 하루에 0.5리터씩 와인을 마셔야만 달성할 수 있는 수치랍니다.

로마인들의 막대한 와인 수요는 당연히 와인 공급을 위한 포도밭의 증가 현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여기에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로마 근처에 있는 폼페이시의 포도밭과 와인 수출입항이 잿더미로 변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사라진 와인 물량이 무려 2년치였답니다. 이로 인해 로마에서는 와인이 부족해져 가격이 폭등하게 되었죠. 그러자 사람들은 한 몫 벌기 위해 너도나도 포도 농사에 뛰어들었는데, 너무 지나쳤는지 불과 몇 년 만에 공급 과잉 현상이 일어나 도리어 가격이 폭락하고 말았답니다.

사방이 포도밭으로 변하는 광경에 넌더리가 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는 92년 금지령을 내려 로마 본국에서는 더 이상 포도를 심지 못하게 하고, 속령에서는 재배 중이던 포도나무의 절반을 뽑아버리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이를 지키지 않고 계속 포도 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들었기 때문에 결국 황제의 금지령은 280년 폐기되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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