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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화의 즐거운 와인 생활> 습관적으로 굳어진 것들 좀 심심하지 않나요? - TENUTA DELLE TERRE NERE ETNA BIANCO 20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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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화의 즐거운 와인 생활> 습관적으로 굳어진 것들 좀 심심하지 않나요? - TENUTA DELLE TERRE NERE ETNA BIANCO 2012

와인비전 2015. 3. 16. 11:39




맥주에는 치킨, 삼겹살이나 국물 안주에는 소주, 전에는 막걸리.

마치 공식과도 같은 이런 매칭은 그 동안 우리의 입맛에 아주 잘 어울리는 

조화로운 마리아주라고 여겨온 결과일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잘 어울리기도 하지요.

저 조합이 다른 짝을 이루기라도 한다면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치킨에 소주도 이상하고, 국물 안주에 맥주는 배부를 것 같고, 

막걸리에 삼겹살도 뭔가 오버되는 느낌일 것 같고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자주 마시는 맥주, 소주, 막걸리 등은 

사실 우리의 음주 문화에서 안주를 그닥 가리지 않고 즐기고 있는 술들입니다.

언제든 밥상에서 즐길 수 있는 술들이지요. 아마도 우리의 식문화 속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이유인 듯 합니다. 

익숙해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와인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와인은 뭔가 위의 술들과 다른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용잔이 있어야 하고, 치즈와 크래커 정도의 전용 안주도 있어야 하고, 

촛불도 있어야 하고, 와인을 마실 이유도 있어야 하고 말이지요.

요즘은 덜 하지만 "어제 와인을 마셨어." 라고 하면 "무슨 날이었어?" 하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듣기도 했었지요.

이는 분명 "어제 소주 마셨어." 혹은 "어제 맥주 마셨어." 하는 이야기 후에 오는 반응과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생활 속에서 와인을 맛있고 쉽게 즐길 수 있는 여러 팁들을 전문가나 애호가들이 열심히 알리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어색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도 보입니다.

와인은 서양 술이니까 역시 서양적인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만 보일까요?


저는 밥상에서 즐기는 와인을 좋아합니다.

가격적 부담이 적은 와인을 오늘 저녁 반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있는 저녁 시간을 좋아합니다.

제철을 맞이해 준비만 반찬거리들과 와인의 조화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실패도 있고, 의외의 성공도 있습니다.

실패한다면 그런 조합은 피하면 되고, 성공한다면 즐거운 시간을 누릴 수 있지요. 

사실 실패와 성공에 대한 부담은 없습니다.

결과를 상상하는 과정의 설레임이 가장 큰 재미라고 할까요?


뜨끈뜨끈한 감자탕에 보르도를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요,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는 서해 굴구이와 보졸레를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요,

조개구이와 로제의 조합은 상상만으로도 정말 즐거운 일이고, 

김장철 쫄깃하게 삶아낸 돼지고기와 보쌈김치. 그리고 샴페인도 훌륭하고,

한방 족발과 과일향이 좋은 쉬라즈, 막창과 샤또네프 뒤 파프,

살캉하게 데친 향 좋은 두릅과 까르메네르, 참나물과 비오니에,

불고기와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 듣는 사람들마다 충격적이라고 했던 닭회와 리슬링.

시도해 보면 재미있는 거리들이 무궁무진합니다.


이번 보름에는 건조시킨 묵은 나물들을 불리고, 삶고, 양념으로 무친 보름 나물들과 에트나 비앙코를 매칭해 보았답니다.

구입 전에 이 와인은 비오니에 같은 유질감이 있지만 산미는 적고, 알콜도 낮다는 전문가의 설명을 들었지요.

그리고 인터넷 서핑을 시작합니다. 생소한 이 와인은 어떤 특징을 가진 와인인가? 

다른 이들의 시음평은 어땠는지를 살펴봅니다.

이탈리아 토착 품종으로 Carricante, Catarratto, Inzolia 등으로 만들어진 화이트 와인입니다.

연두색을 띄는 노란빛의 투명한 외양을 하고 있지요.

주요 캐릭터는 시트러스 류의 과실향, 오크 숙성에서 오는 기타의 향들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단순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다양한 과실향들이 다채롭습니다.

사과, 레몬, 자몽, 리치, 그린 망고 정도의 향들과 여운에서는연기, 백후추, 피망 같은 쌉싸레하고 매콤한 뉘앙스도 있고요.

전문가의 설명대로 산도는 낮은 편이며, 알콜도 튀는 듯 느껴지지 않았으며 

다소 느껴지는 유질감은 마치 과일의 씨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


건조된 상태로 겨울을 난 나물들은 깊고, 구수한 맛이 특징이지요.

그 향과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리를 하기 때문에 양념을 과하게 하지 않습니다.

들기름 혹은 참기름 약간. 아니면 소금간. 부드러운 식감을 위해서

감칠맛이 나는 육수를 만들어 쪄내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말린 취나물, 말린 고사리, 말린 가지나물, 말린 고구마순 등이 고소한 기름 향을 입고 깊고 구수한 향을 내는 중에

신선한 과일향이 나는 에트나 비앙코가 더해지면 묘한 계절적 정취도 느껴집니다.

물러나기를 아쉬워 하는 겨울과 이른 봄의 조우가 느껴진달까요?

산도와 알콜의 도수가 조금이라도 높았다면 아마도 삐그덕하는 아쉬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날의 마리아주는로서는 맞춤한 선택이었고, 

와인 자체로만 본다면 낮은 산도는 와인을 저평가하게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함께 한 음식과의 합으로 본다면 이 점이 미덕이기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결론은 맛있었다는 것이지요.


오늘 저녁,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도하는 밥상 일탈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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