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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회 테이스팅 세션 - 여름이니까 시원하고 발랄하게, Rose Show! 본문

테이스팅 세션

제 11회 테이스팅 세션 - 여름이니까 시원하고 발랄하게, Rose Show!

와인비전 2013. 5. 8. 17:00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오래 전 눈이 소담소담 내리는 화면을 배경으로 연한 핑크빛 통통한 볼을 한 귀여운 계집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며 쌀알만큼 작은 유치를 드러내며 웃는, 서른 한 가지의 맛이 있다는 아이스크림 광고. 당시 화장 좀 한다는 여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안나수이 301호 블러셔를 사대기 시작했었죠. 뿐만 아니라 딸기 우유 색상으로 유명했던 이브 생 로랑의 22호 립스틱 컬러도 역시나. 이 제품 사재기 한 분들도 많았지요. 아! 물론 핑크 하면 떠오르는, 우리나라에서 강아지 '김치'를 입양해 간 패리스 힐튼의 깔맞춤 패션과 핑크 벤틀리도 떠오르네요.

핑크(Pink)는 이렇게도 여심을 흔드는 컬러인가요? 안나수이 301호 블러셔나 이브 생 로랑 22호 립스틱이나 패리스 힐튼이니까 그나마 봐 줄 수 있었던 깔맞춤한 핑크와는 상당히 다르지만 와인에도 핑크라는 색상명을 달고 있는 로제(Rose). 도대체 이 컬러를 보고 왜 'pink'를 끄집어 내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샐먼 핑크(Salmon Pink)라고 하나? 연어살을 보고 분홍을 떠올리다니... 서양인들의 컬러 인식 체계는 저와는 너무 달라요.

저는 개인적으로 로제를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해서 이번 기회가 꽤 의미있는 자리였습니다. 테이스팅 세션에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은 넓고, 와인은 많으니 다양한 와인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니까요. 뜨거운 휴양지에서의 여름. 특히나 해변에서 즐기는 차가운 로제 와인과 조개구이. 저는 로제를 마시면서 이런 장면이 딱 떠오르더라구요. 저희 동네에서 조금 내려가면 낙조가 기막히게 멋진 왜목마을 바닷가에서 조개구이를 먹을 수 있거든요. 제가 그 동네 조개구이에 좀 안 좋은 기억이 있긴 하지만 문득 그곳에서 로제와 함께 조개구이를 즐겼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그럼 제게 바닷가 조개구이의 환타지를 불러 일으킨 그날의 로제들을 보시죠.


이 기갈 따벨(E. GUIGAL TAVEL 2010). 그르나슈 50%, 쌩쇼 31%, 까리냥과 시라, 그외 와인 19%.


저 이 기갈(E. GUIGAL)의 따벨(TAVEL) 마셔봤어요. 바로바로 3GO 선데이 와인쇼에서. 막걸리 안주와 가장 잘 어울린 와인이었지요. 당시는 좀 묵은... 2007빈티지였는데 테이스팅 세션의 'Rose Show!'에서는 2010년 빈티지로 좀 더 신선한 와인이었습니다.

로제 와인치고는 탄닌이 느껴지고요. 알콜의 감도도 조금 강합니다. 구조감은 탄탄하고 산미도 잘 숙성된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지요. 그러나 아로마(aroma)에 비해 플레이버(flavour)가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조금 강한 알콜의 감도가 도드라지게 느껴진 점은 감점 요소였습니다. 평점은 85.7. 8개의 로제 와인 중 4등. 

따벨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로제를 생산하는 남부 론의 지방명입니다. 그리고 이 기갈은 프랑스 남부 론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최고라고 인정되는 로제 와인을 마시게 된 경우랄까요? 그런데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면 재미가 없지요. 이날 로제 와인의 점수는 8종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88점에서 82점 수준. 제겐 각국에서 생산되는 로제 와인을 다양하게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큰 의의였지만 테이스팅 세션에서는 항상 "우리가 최고라고 여기는 와인이 정말 최고일까?"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이 가장 큰 덕이니까요. 


바론 리카솔리 알비아(BARONE RICASOLI Albia) 2007. 산지오베제 80%, 멜롯 20%.


주 포도종이 산지오베제.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생산된 로제입니다. 저는 이 기갈 따벨에 비해서 탄닌이 부드러워서 첫 한 모금에서는 탄닌을 거의 느끼지 못했었고, 산도 역시 잘 어우러져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숙성된 발효향도 좀 느꼈구요. 

혹시 피노누아로 만든 로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좋은 느낌이라고 생각된 발효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멤버 대부분이 우아하다는 표현을 썼지요. 그런데 이런 특징이 때로는 인텐시티(intensity)가 강하지 않다는 평으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알비아의 경우 이런 특징으로 점수의 편차가 좀 크게 난 와인이었답니다. 

평점은 86.9점으로 2등을 한 와인. 


마르께스 데 까세레스(Marques de Caceres) 2010. 뗌프라닐요 80%, 가르나차 띤따 20%.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는 로제 와인의 인기가 별로인가 봐요. 와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려고 네이버에서 한글로 '마르께스 데'까지 치니까 다른 포도종의(주로 레드 와인)만 검색창 밑으로 줄을 서네요. 이 로사토(rosato)는 풀네임을 다 쳐야 검색이 되는군요. 

검색하다가 재밌는 정보를 발견. 이 와인은 꽤 좋은 평가를 받는 와인인가 봐요. 마침 테이스팅 세션에서 마셨던 빈티지인 2010은 WE 89점- Top 10 Best Buy에 선정(2010빈티지), Le Mondial du Rose 2011 금메달(2010빈티지). 그러면 테이스팅 세션 멤버들의 평가는?

평점 82.6 점으로 전체 7등. 저는 이런 게 참 재밌습니다. 공인된 평가 프로그램에서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와인이 출품이 되어서 좋은 평가를 받았겠지만 소비자는 매번 최상의 컨디션인 와인을 마시지 못하니까요. 공인된 기관, 유명한 평론가. 혹은 오랫동안 와인을 즐겨온 와인 마니아의 평가가 와인을 선택하는 우선적인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역시나 중요한 것은 개인의 취향에 맞는 선택이라는 거죠.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세상은 넓고, 와인은 많으니까요. 

물론 저처럼 각각의 종류별 와인의 가장 기준이 되는 맛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큰 사람들은 내 입에는 낯선, 뭔가 내 취향과 맞지 않지만 공인된 평가가 좋은 와인일 때에는 혹시나 '내 경험의 부족으로 이 와인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포인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겁니다. 로제 와인의 경험이 정말 부족한 저는 그래서 서너 가지의 와인을 시음한 후 선생님과 다른 멤버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로제 와인은 어떤 점에 포인트를 두고 마셔야 하는 건가요?"

의외로 답은 간단했습니다. 

"가볍고, 시원하게."

이런 단순한 기준에서도 7등을 한 이 와인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일단 저는 한모금 마시는 순간 혓바닥이 자극적일 정도의 산도를 느꼈고, 알콜도 튀는 듯 했습니다. 구조감으로 본다면 와인 자체가 좀 薄(박)하다는 느낌. 그리고 다른 멤버들의 시음 노트를 봐도 이런 의견은 공통적입니다. 빈약한 구조감과 허술함. 정리되지 않은 느낌. 인상적이지 않다. 그래서 생각없이 물같이 마실 수 있는 와인이다. 


로스 바스코스 로제(LOS VASCOS ROSE) 2011. 카베르네 쇼비뇽.


평점 88점. 'Rose Show!'의 1등 와인입니다. 2등을 한 Albia와는 2점 여 차이. 다른 와인들의 점수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면 상당히 압도적인 1등이라고 볼 수도 있는 와인이었지요. 그.러.나. 역시도 우리나라는 로제 와인이 정말 인기가 없는가 봅니다. 검색조차 잘 안 되는...

로제에 대한 경험이 없는 저는 이 와인에 아주 낮은 점수를 줬습니다. 이 와인에 대한 제 한 줄 평은 탄산이 빠진 페리에? 산도와 탄닌이 어우러지지 않고 각각 튀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알콜이 다소 높게 느껴져서 제 개인적 점수는 84점. 

그러나 이 와인에 좋은 점수를 준 다른 멤버들의 평은 로제 와인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의견이 압도적입니다. 첫 맛의 상큼함, 발랄한 향, 컬러 등 이 모든 것이 좋다는 의견과 함께 산도의 힘으로 구조감을 훌륭히 유지하며 타이트하게 느껴지는 질감과 길게 이어지는 여운 등이 언급되었습니다. 


클라랑스 디용, 클라랑델 로제(Clarence Dillon, Clarendelle Rose). 보르도. Merlot 75%, Cabernet Sauvignon 17.5%, Cabernet Franc 7.5%


테이스팅 세션의 멤버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저의 Rose Show! 클라랑델 로제는 평점 85.4점으로 전체 5등이었으나 제 점수는 90점으로 제가 준 점수로는 최고의 점수를 받은 와인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바닐라, 복숭아 등의 달큰하고 부드러운 향이 좋았고, 산도와 탄닌의 조화. 그리고 지속적인 여운에 점수를 줬습니다.

그러나 이 와인의 쓴맛을 지적한 멤버들의 의견이 다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뽑은 최고점의 와인과 최저점의 와인이 멤버들의 평균적인 의견과 완벽하게 엇갈릴 때면 은근히 주눅이 들기도 하는 게 사실입니다. 


델리카토 화이트 진판델(Delicato, White Zinfandel) 2010. Zinfandel 100%.


진판델이니까요. 미국 와인입니다. 정말 저를 깜짝 놀라게 한. 로제를 싫어하는. 그러니까 "별로 좋아하지 않아." 정도가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로제를 마셔서 그런 게 아닐까 했던 와인이었지요. 

한 마디로 쭈쭈바 딸기맛이더라구요. 아니면 발렌타인데이에 제과점에서 살 수 있는 정도의 와인의 맛.

멤버 평점은 81.7점. 제 점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80점. 'Rose Show!' 의 꼴찌 와인 되겠습니다. 재밌는 의견 중 하나로 '지린내'가 난다는 표현이 있었는데요 저는 이게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더군요. '지린내'를 제 식으로 표현한다면, 으깨진 딸기가 오래돼서 나는 냄새?


페랭 에 피스 라 비에이유 페름 로제(Perrin & Fils, La Vieille Ferme Rose). Grenache 50%, Syrah 20%, Carignan 15%, Cinsault 15%.


라 비에이유 페름 로제. 이 와인도 이 기갈과 같이 프랑스 론 지방의 와인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컬러는 가장 여리여리하고 예쁘지요. 굉장히 유혹적인 컬러감이기도 하고요. 이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작업주'이다." 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작업주' 발언은 제가 이전에 로스 바스코스를 두고 "이것은 작업주네요."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의 연장이었답니다. 

저는 이 와인이 '작업주'라는 의견에 반대표를 던지겠습니다. 왜냐... 이 와인은 알콜이 너무 도드라지게 튑니다. 소주에 물이랑 홍초를 섞으면 대충 이 맛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러면서 좀 건강에 안 좋을 것 같다는 염려와 더불어 말이지요. 제 점수는 이러한 혹평 속에 역시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80점. 멤버들의 평점은 83.3점으로 6등 입니다.

여린 컬러로는 기대할 수 없는 무거운 바디감이나 향은 나쁘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정도라는 의견. 제 평보다 좀 더 독하다면 독할 수 있는 의견으로 인텐시티(intensity)를 평가하는 부분에서 '강하고, 나쁜 쪽으로 인상적이다.'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살짝 안타까운 의견으로 '구조감은 튼튼하나 좋다는 느낌은 없으며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다.'라는 표현에서는 갑자기 '숀 리'가 생각이 나는 묘한 현상이(이것은 다분히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 옷발 안 받고, 일상 생활이 불편할 것 같은 근육질 남성은 보기에 부담스럽고 싫다는...). 


니더버그 파운데이션 로제(Nederburg Foundation Rose). Pinotage 100%.


다 아실테지만 남아공 와인입니다. 일단 점수 공개부터 하자면 제 점수는 88점. 멤버 평점은 85.3점으로 3등 와인입니다. 제가 준 점수 기준으로도 3등 와인입니다. 

멤버들의 전반적인 의견은 딱 스탠다드한 로제 와인이라는 평입니다. 산미는 고급스럽다고는 할 수 없으나 나쁘진 않은 정도. 바디감은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잘 짜여진 와인이라는 인상. 전체적인 풍미는 단순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약하게나마 무언가 여러가지 것들이 오밀조밀한 느낌이 있어서 전반적으로는 적절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와인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로제 경험은 매우 적지만 제가 기대하는 로제 와인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와인이지 않은가 싶어서 입니다. 우선, 다른 와인들보다 컬러감에서 좋구요. 병이 예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로제 경험이 부족한 제가 생각하는 로제 와인은 이벤트적 성격이 강한 와인입니다. 그래서 와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슴슴하게 한, 두잔 정도는 즐길 수 있는 와인이어야 하고, 특별한 날에 좋은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면 매력적인 비주얼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인거죠.

혹시나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 "너 외모지상주의자냐?"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이벤트적 성격으로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면 일단은 보기에 예뻐야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니 분위기 상 건배를 하고 한 잔 마신 후에 다시 마시지 않을지라도 가격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지요. 

그렇다고 맛이 매우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멤버들의 긍정적인 평가에서도 보시다시피 '적절한 수준의 와인이다'. '딱 로제 와인의 기본이다'. 라는 것처럼 로제를 처음 시도해 보는 사람들에게 적정 기준을 세워 줄 와인으로도 좋은 와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캉스 와인으로  로제  와인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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