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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회 테이스팅 세션 - 피노 누아. 부르고뉴, 그리고 오레건. 본문

테이스팅 세션

제 17회 테이스팅 세션 - 피노 누아. 부르고뉴, 그리고 오레건.

와인비전 2013. 8. 1. 16:06



-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다른 품종으로 만든 어떤 와인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피노 누아는 숙성된 기간과 포도 재배 지역에 따라 스타일이 크게 달라지는 와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부르고뉴산 피노 누아는 입에서 느껴지는 바디감이 다분히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게 살아있는 탄닌과 산도, 그리고 도대체 그 가볍고 얇은 몸통 어디에 그토록 다양하고 풍성한 향을 숨겨놓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간에 따라 변하면서 풀어내는 변화무쌍하고 깊은 향으로 인해 '이런 것이 와인이구나.' 싶게 합니다. 이런 감상은 제가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마시면서 늘 느꼈던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상에 꼭 맞는 와인만 존재하는 건 아니더군요. 같은 부르고뉴이지만 마을 단위마다 다른 개성을 앞세운 와인들이 수도 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부르고뉴 이외의 신세계 와인들이 부르고뉴 스타일로 양조되기도 하고, 같은 피노 누아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와인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번 테이스팅 세션의 테마는 부르고뉴의 어린 그랑 크뤼 및 프리미에 크뤼 피노 누아와 오레건 피노 누아 와인의 대결(?)입니다. 이하는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게 와인을 선별한 조쏘가 말하는 테마 결정의 이유입니다. 

"요즘 오레건 피노 누아를 테이스팅 해보면 예전에 느껴지던 느끼함과 캔디 향, 과실 폭탄이라는 단어보다 점점 더 부르고뉴 와인스러워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즘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테이스팅 해보면 예전의 묽거나 산도가 지나치게 강한 느낌보다는 좀 더 과실에 중점을 두고, 논 필터링을 통해 바디감과 탄닌을 살리는 경향을 많이 봅니다." 

"오레건의 피노는 부르고뉴를,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지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을 이번 테이스팅을 통해 비교해 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가격과 맛을 고려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가 이번 주제입니다. 선택한 부르고뉴 피노 누아들은 아로마에 중점을 둔 두 종류와 탄닌과 함께 구조에 초점을 둔 두 개의 피노 누아로 선정했습니다. 선택한 오레건 피노 누아들은 스모키함과 스파이시함에 중점을 둔 피노 누아들과 조금 더 절제된 향을 보이는 피노 누아로 선정했습니다."

 

그럼 여덟 종의 피노 누아 와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각 사진 밑에 적힌 간단한 한, 두 문장의 평은 조쏘의 평입니다.

 

1. 아가일 리저브(Argyle Reserve) 2005/ 오레건

"알콜이 높고 향기가 깊어 과실의 쥬시함과 매끄러운 타닌이 긴 뒷맛으로 연결됩니다. 마시기 편하고 풍부한 향이 특징입니다."

 

멤버들의 평점 88.8. 이 와인의 최저점은 85점. 최고점은 91점이었습니다. 제 점수는 89점입니다. 91점을 준 멤버의 테이스팅 노트에 정리된 와인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향, 산미, 풍미와 적당한 바디감으로 인해 발란스가 좋으며 탄탄한 구조감이 흔들림 없는 와인이다. 향의 강도는 적당하게 느껴지나 상대적으로 탄닌의 부족함이 아쉽고, 여운도 생각보다 짧은 편이며 복합성도 떨어진다. 과일향과 부드러운 탄닌이 만들어내는 발란스와 구조감으로 마음에 쏙 드는 와인이다." 

첫 등장하는 와인들은 평균적으로 점수가 좀 후한 편이라는 내부적인 의견이 있었으나 제 소견으로도 좋은 와인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이 와인의 특징으로 꼽는 부분은 베리류의 향과 스파이스의 조화가 매우 좋았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과하지 않았던 스파이스는 전체적으로 와인에 청량감을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날 나온 와인들의 특징은 저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멤버 한 분도 의견을 주셨던 것처럼 스모키함, 연기 혹은 훈연향... 뭐, 이런 향들을 갖고 있는 와인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2. 위들로 노에라 본 로마네 프르미에 크뤼 레 보몽(Hudelot-Noellat Vosne Romanee 1er Les Beaumonts) 2007 / 부르고뉴

"로버트 파커가 꼭 손에 넣어야 하는 도멘이라고 평가한 알랭 위들로 노에라. 특히 본 로마네 레 보몽은 에세죠 위에 위치하고 있어 매우 향기로우면서 파워풀한 텍스쳐를 가지고 있습니다."

 

멤버들의 평균 점수는 91.8점. 최저점은 86점. 최고점은 95점이고, 제 점수는 93점입니다. 전체적으로 1번 와인보다는 높은 점수를 보였으며, 최고점과 최저점도 1번 와인보다는 높습니다.

최고점을 준 멤버는 컬러와 뛰어난 부케를 이유로 피노 누아가 아닌 것인가? 하고 의심하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멤버는 이 날의 와인 중 이 와인을 최고로 꼽았습니다. 이 와인은 가장 오랫동안 향이 지속됐던 와인으로 기억됩니다. 네 가지의 와인을 시음한 후(그러면 대개 1시간 가량이 지납니다)에 처음 잔에 따랐을 때와는 다른 변화된 향의 모습을 보였고, 이후에도 계속 향의 변화가 있었기에 멤버들의 궁금증을 샀던 와인이기도 했습니다.

최저점을 준 멤버의 테이스팅 노트에도 향의 강도는 분명하게 'strong'이라는 굵은 메모가 보이며, 멤버 중에 혹시 멘사 회원은 아닐까 싶은 총명한 '조군'의 테이스팅 노트에는 부르고뉴 피노 누아 중 상급의 제품임을 확신하는 메모가 보입니다. 그리고 멤버 중 또 한 명의 소믈리에의 메모에도 주황빛의 컬러와 가죽 냄새와 젖은 나무 냄새. 그리고 좋은 산도와 부드러운 탄닌 등을 이유로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첫번째 와인과 비교를 한 제 테이스팅 노트에는 부드럽지만 보다 강건한 탄닌과 과일향보다는 흙향, 그리고 흙향이라고 표현된 향이 나무향, 한약재 향, 연기향 등으로 세밀하게 나뉘어져 변화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는 메모가 남아있습니다. 


3. 삐에르 아미오 에 피스 끌로 생 드니(Pierre Amiot et Fils Clos Saint Denis) 2007 / 부르고뉴

"모레 생드니의 미네랄 뉘앙스와 함께 과즙의 향연, 탄탄한 구조와 탄닌의 느낌은 피노 누아 중에서도 굉장히 기품있는 맛을 보입니다."

 

멤버들의 평점 93.1점. 최고점은 98점, 최저점은 90점. 제 점수는... 제가 최고점을 준 본인입니다. 제가 점수를 발표했을 때 모두의 반응은... "어디서 점수를 뺀 거야?" 하는 반응이... 저도 순간 당황해서 너무 오버해서 점수를 줬나 싶어서 어디를 좀 빼 볼까 했으나 저는 그냥 소신대로 점수를 고수하기로 했습니다. 앞의 두 와인들과 비교했을 때 극명하게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었으니까요. 우아하면서도 고루하지 않은 그런 느낌! 그리고 저는 이 와인은 곧 죽어도 부르고뉴 피노 누아라고 확신했습니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가 갖고 있는 그 느낌이 고스란히 있었거든요.

세번째 와인까지 진행되면서 탄닌은 점차 강해졌습니다. 이 와인에 와서는 잇몸이 조여드는 것 같은 탄닌을 느꼈지만 그 감촉이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거칠게 잡아먹을 듯이 들이닥치는 탄닌이 아닌 진정 '하이얀 모시 고깔 고이 접어 나빌레라.' 이런 느낌이었다면 설명이 될까요? 긴 여운과 더불어 복합적인 향이 조화롭게 구성된 듯한 느낌에 도드라지지 않지만 엣지있게 드러나는 스파이스, 유치하지 않은 과일향. 제가 이날 늦게 약속이 있어서 테이스팅만 끝나고 바로 나왔는데, 이 와인을 여유롭게 한 잔 더 하지 못한 것이 내내 한이 될 정도였습니다. 


4. 셰아 와인 이스트 힐(Shea Wine East Hill) 2006 / 오레곤

'파커 포인트 90점대를 항상 넘기는 오레건의 숨은 보석 피노 누아. 단정한 향기가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연상 시킵니다.^^"

 

멤버들의 평균 점수는 88점. 최고점은 96점. 최저점은 82점. 제 점수는... 이 와인의 최저점을 준 사람 역시 접니다. 세번째 와인의 점수를 끌어 올린 장본인이 저라면, 이 와인의 점수를 끌어내린 장본인 역시 저라고 할 수 있을 듯요. 

실은 이 와인의 점수는 처음에는 79점이었는데 모두의 반응이 "그 점수의 와인은 못 먹는 와인이다." 하여 겨우 올려 준 점수가 82점. 하지만 저만 이런 점수를 준 것은 아니고 첫 와인에서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스모키함과 연기향이 도드라지는 와인들이 많다는 의견을 함께 했던 또 다른 멤버의 점수도 83점. 그 멤버와 제가 준 낮은 점수의 공통점은 '매캐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잼같이 끈적하고 달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밌게도 이 와인에 대해서 딱 한 마디를 남긴 멤버의 메세지는 '훈제 닭고기향'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최고점을 준 멤버는 이 와인에 대해 매우 훌륭한 평과 함께 이 날의 최고 점수를 줬습니다(이 날 이 멤버의 96점 와인은 두 가지였습니다). 이하는 최고점을 준 멤버의 와인 평입니다.

"쌉쌀하고 묵직한 산도, 풍부하고 무거운 알콜의 조화가 좋다. 진하고, 탄탄한 구조감은 강한 인상을 가진 대장의 느낌을 갖는다. 여운과 풍미가 길며 좋은 느낌으로 이어지고 복합적이며 다양한 향과 진한 맛을 가진 와인이다. 심심한 나무향과 딸기, 덜 익은 붉은 과일류와 다소 날렵한 동물성 향과 허브의 싱그러운 향."

이와 같은 평을 준 멤버는 이 와인의 잠재력이 고득점의 이유라고 했습니다. 두텁고 진한 바디와 탄탄한 구조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보다 좋은 모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저도 와인의 장래를 볼 수 있는 혜안을 어서 갖게 되었으면 하는 부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그 혜안이 열리지 않아 제가 준 점수는 후하게 준다고 준 것이 82점.   

 

5. 드루앵 라로즈 샹베르탱 끌로 드 베제(Drouhin Laroze Chambertin Clos de Beze) 2007

"1850년도에 설립된 전통적인 도멘으로 쥬브레 샹베르탱 지역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며 아로마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양조하기 때문에 어릴 때도 향이 살아있는 피노 누아를 보여줍니다."

 

멤버들의 평균 점수는 90.8점. 최고 점수는 96점, 최저 점수는 85점. 제 점수는 88점 입니다. 최고 점수를 준 멤버와 최저 점수를 준 멤버의 기준은 모두 구조감인 것 같습니다(테이스팅 노트를 매우 불성실하게 작성한 멤버들임 -.-)

매우 감사하게도 항상 테이스팅 노트를 최고로 성실하게 작성해주시는 멤버의 테이스팅 노트와 기타 이 와인에 대한 메모를 남겨준 멤버들의 평을 잘 조합해서 보면 이 와인의 특징은 도드라지는 산도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입니다. 강렬한 산도와 날카로운 탄닌이 발란스를 맞추고, 와인에 꼿꼿한 구조감도 이루어져 있다는 평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와인에서 메탈릭한 미네랄리티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조쏘가 소개한 와인의 정보에 따르면 아로마를 최우선한 양조법으로 어릴 때도 살아있는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하나, 아직은 복합성이 부족하다는 의견과 더불어 과일향보다는 나무와 풀의 향. 그리고 덜 익은 과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강한 산미 정도가 현재 상태에서 느껴지는 큰 이미지라는 총평입니다.


6. 펜너-아쉬 듀씬 빈야즈(Penner-Ash Dussin Vineyards) 2006 / 오레곤

"고소한 스파이스의 향기가 강하고 응축된 향기와 스모키한 풍미, 엑조틱한 여운이 인상적인 와인."


멤버들의 평점은 89.1점. 최고점은 90점, 최저점은 85점. 제 점수는 87점입니다. 

총 여덟 병의 와인을 시음하면서 네 가지 와인의 시음을 마치고 나면 잠시 쉬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후 진행되는 와인들에 대해서는 멤버들의 테이스팅 노트가 부쩍 불량해집니다. 저 역시도 그렇구요. 그래서 최고점과 최저점의 이유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멤버들이 노트에 남긴 아주 작은 힌트들을 최대한 활용해가며 와인의 특징을 정리해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한 분의 매우 성실한 노트가 있긴 하지만 그것을 모두의 의견으로 해석할 수는 없으니까요. 여튼 성실한 노트를 바탕으로 당일에 있었던 분위기와 오가던 대화들에 대한 제 깨알같은 메모를 바탕으로 이 글을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바 입니다.   

우선 최저점을 준 멤버는 이 와인은 단맛이 매우 강하다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 의견에 대해서 저 역시도 인위적인 향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으로 함께 동의합니다. 그리고 평점과 같은 89점을 준 다른 멤버 역시 강한 단맛으로 인해 치우친 맛이라는 평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소 낮은 산도와 탁한 알콜이 단맛을 도드라지게 느껴지게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7. 켄 롸이트 카터(Ken Wright Carter) 2007 / 오레곤

"굉장히 완고한 와인으로 타이트한 느낌과 체리 스파이시한 느낌이 강하다. 컬트 피노 누아. 완고함이 느껴진다."


평점은 92.1점. 최고점은 95점, 최저점은 87점. 제 점수는 93점입니다.

이 와인이 나왔을 때 진짜는 뒤에 몰려 있는 게 아니냐는 격앙된 목소리들이 있었지요. 저도 첫 모금에 스파이시가 매우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혹시 본 로마네가 아닐까 하는 메모를 남긴 멤버도 있었습니다. 

87점이라는 최저점을 준 멤버는 컴플렉시티의 부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허브와 가벼운 과일향의 단순함을 메모로 남겼으며 이로 인해 청량하고 경쾌한 느낌이라는 메모도 추가되어 있습니다. 여운은 짧은 듯 하나 가늘고 길게 이어지며, 깨끗하다는 인상을 주는 와인입니다. 향긋한 나무향, 바이올렛, 딸기류의 붉은 과실향 등의 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8. 뿌세 도르 꼬르통 끌로 뒤 루아(Pousse d'Or Corton Clos Du Roi) 2006 / 부르고뉴

"뉘 지역의 화려함은 없지만 와인의 구조가 제대로 잡혀있고 스케일이 굉장히 큰 와인입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만 꼬르통이 가진 탄닌의 느낌과 향기가 기존의 피노 누아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평균 점수는 93.4점으로 이 날 최고점의 와인입니다. 최고점은 96점, 최저점은 87점. 제 점수는 96점입니다. 저 역시 이 와인에 최고점을 준 당사자로서 이 와인이 갖고 있는 섬세한 탄닌이 만들어내는 구조감에 큰 점수를 줬습니다. 참고로 96점을 준 멤버는 저 뿐만이 아니랍니다. 

부드럽고 기품있는 산도와 알콜, 탄닌의 조화가 좋으며 나무랄 데 없는 외유내강의 와인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여운 역시 길게 이어지며 향 또한 나무와 베리류의 과실, 동식물성 향들의 조화, 낙엽과 꽃, 버섯 등 복합적이라는 평입니다.


테이스팅 세션이 끝나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 집중해서 시음을 하고, 편견을 없애고, 아는 정보들을 총동원해서 와인을 분석하고, 노트도 더 충실하게 정리를 할 걸... 하는 아쉬움입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런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특히 집중하지 못한 점. 그렇기 때문에 후기를 정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기도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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