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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팅 세션

테이스팅 세션 번외 - 류산슬과 게뷔르츠트라미너가 어울릴까?

와인비전 2013. 3. 29. 15:00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의 만남은 언제나 진리이지요. 아파 죽겠어서 침대와 일체된 사람에게 가장 많이 묻는 문병자들의 질문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이듯이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인간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물론 뒤에 따르는 잉여 양분에 대한 책임은 개인의 문제. 

특히나 제게 와인은 맛있는 음식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고백합니다. 아주 단순하게 좋은 고기를 먹을 때에는 레드 와인이 생각이 나고, 좋은 해산물을 먹을 때에는 화이트 와인이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는 일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좋은 고기에는 레드 와인. 바리바리 싸 가지고 갑니다. 흥겹게 먹고, 마십니다. 그러면.. 운전은 누가 합니까? 운전은 소가 합니까? 소는 이미 와인과 XOXO 관계가 되어서 뱃속에...해산물을 먹으려면 산지를 갑니다. 와인과 기타 연장들을 챙깁니다. 방을 잡습니다. 해산물을 바리바리 싸 옵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즐겁게 먹고 마십니다.

새해에는 일주일에 두 번만 음주를 하자며 결심을 한 어느 날 밤. 문득 알자스 게뷔르츠트라미너와 류산슬을 함께 하면 너무 맛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시간은 11시가 훨씬 넘은 시각. 당장에 실험을 해 볼 수는 없지만 이미 머릿속에서는 맛의 조합이 시작됩니다.

일단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바디감이 큽니다. 풀바디의 오프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윗 스파이시한 향이 이 와인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훈제 연어 혹은 나쵸칩과 함께 하면 환상이라는 말을 들어왔었죠. 

그래서 든 생각입니다. 달콤한 맛이 나는 류산슬. 그리고 죽순과 기타 해산물들이 전분과 뒤섞여 바디가 큰 음식일 테니 거기에 게뷔르츠트라미너의 스파이시 맛이 엣지를 준다면 요거요거 좀 괜찮겠다는 생각. 전체적으로는 달고 부드러운 식감에 방점을 찍듯 힘을 주는 향신료의 향은... 아아아아아... 먹고 싶어.... 

전생에 무슨 착한 일을 그리 많이 했는지... 분명 저는 나라도 구하고, 지구도 구하고, 문명의 발전에도 이바지한 훌륭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나 봅니다. 그 야심한 밤 머릿 속으로 그려보고, 추잡하게 입맛을 다시며 무심하게 날린 페북 메세지... "게뷔르츠트라미너와 류산슬이 같이 먹으면 맛나겠죠?" 

그.러.자.... "류산슬의 전분 소스와 해산물은 피노 그리와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라는 덧글을 시작으로 "류산슬은 미디움 바디의 레드 와인과 어울리고, 게뷔르츠트라미너는 마파 두부같이 매운 음식과 어울릴 것 같다"는 덧글. "그럼 시험해 볼까요?" 하는 덧글. "언제 가면 될까요?", "피노 그리는 제가 가져갑니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제가 가져갑니다." 뭐 요래요래 하여... 자리가 마련되고야 말았습니다. 식탐에 눈이 먼 배고픈 시골 뇨자의 넋두리는 결국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를 시험하는 자리로 사고를 치게 되었으니... 


 

직접 와인을 서브해 주시는 저 팔의 주인공은 진.짜. 소믈리에 입니다. 모델 같은 패셔너블한 외양과 소믈리에 나이프로 와인의 목을 치고, 머리를 따는 간지가 멋져부려..입니다. 

서브해 주시는 와인은 알자스 피노 그리. 이탈리아 북동부의 트렌티노, 베네토, 프리울리에서 생산되는 피노 그리지오와 같은 품종이지만 알자스에서는 다른 스타일로 생산됩니다. 알자스 피노 그리는 풀바디에 스파이시한 열대 과일 향(생강, 바나나, 멜론)이 나고 때때로 꿀 풍미가 도는 드라이에서 미디엄, 스위트한 화이트 와인이 됩니다.


 

그리고 알자스 게뷔르츠트라미너. 향이 매우 강한 화이트 와인입니다. 드라이하거나 오프 드라이. 알콜 도수가 높고 풀바디입니다. 전형적으로 꽃향기(장미, 오렌지 꽃)와 열대 과일 및 스톤 프룻(리치, 복숭아, 포도) 그리고 스윗 스파이시(생강, 계피) 풍미가 납니다. 설명만으로도 우리가 자주 접하는 화이트 와인인 쇼비뇽 블랑이나 샤도네와는 다른 풍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 구하기도 불가. 이리저리 뒤지고, 쑤시기를 일주일. 겨우 구했습니다. 게뷔르츠트라미너 뿐만 아니라 알자스 피노 그리도 아주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죠.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오늘의 주인공 류산슬님 되시겠습니다. 죽순을 비롯한 채소와 해삼 등이 주재료가 되고, 전분으로 버물버물한 끈적한 소스와 단맛이 조화로운 전체적으로 쫀득한 식감의 중국 음식 되시겠습니다. 게뷔르츠트라미너와 함께 할 때는 맛이 하나로 뭉쳐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무겁게 뭉쳐지는 느낌이 납니다. 음식도 와인도 바디가 크고, 단맛이 지배적이었던지라 서로의 장점을 돋아주거나 하는 모습이 아닌 그냥 찰흙을 두 개 합쳐서 더 큰 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듯한 느낌 정도라 보시면 될 듯 합니다. 

기대했던 스파이시한 향의 방점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고, 대신 짜사이를 찾게 되더군요. 하지만 피노 그리와는 훌륭했습니다. 피노 그리도 오프 드라이하고 풀바디한 와인이었지만 게뷔르츠트라미너보다 상큼한 산미가 달고 찐득한 류산슬의 남은 맛을 상큼하게 씻어 주면서 음식의 단맛이 남기는 들척지근한 여운을 산뜻하게 마무리해 주더군요. 아아.. 이것이 바로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경험하는 순간이구나... 하는 기쁨..


 

그리고 마파두부. 역시나 두말 할 필요없이 게뷔르츠트라미너와 좋습니다. 고추기름이 내는 매운 맛과 강한 향신료의 향이 입 안에서 자극을 줄 무렵 풀바디의 산미보다는 단맛이 우선이었던 게뷔르츠트라미너가 투입이 되니 매운맛은 눌러주며 입 안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더불어 음식에서 오는 강한 향신료의 향과 게뷔르츠트라미너에서 오는 리치향이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식욕을 자극합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탕수육 역시도 피노 그리와 더 잘 어울렸습니다. 튀긴 음식과 깔끔한 산도를 가진 피노 그리가 음식을 먹고 난 후 부담스러울 느끼한 뒷맛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더군요. 


 

중국 음식이 갖고 있는 풍부한 향에는 피노 그리와 게뷔르츠트라미너 모두 묻히지 않았습니다. 알자스에서 생산되는 두 와인 모두 풍성한 향과 풀바디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와인이었기 때문에 갖가지 향신료와 재료. 튀기고, 볶는 조리법으로 생겨나는 중국 음식의 다양하고 복잡하고 진한 맛과 향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때문에 음식의 여운을 씻어주는 음료의 역할 뿐 아니라 음식의 풍미를 더욱 즐길 수 있게 해 주고 나아가 음식과 함께 하면서 와인의 매력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던 조합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와인을 공부하면서 항상 끊이지 않는 고민은 이 와인은 어떤 음식과 함께 할 때 제대로 된 맛과 매력을 발산할 수 있을까인데 전통적으로는 와인과 치즈. 육고기와 레드 와인, 해산물과 화이트 와인. 이런 공식이 상식처럼 통용되지요. 그러나 와인은 대개 산지의 음식과 잘 어울리는 음료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유럽의 전통적인 음료로 오랫동안 음용되어 오던 와인이 이제는 극동의 반도에까지도 많은 애호가를 낳을 만큼 세계적인 음료가 되어버린 지금 전통적인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주 뿐만 아닌 우리 식탁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과의 조화를 찾는 시도는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왔었죠. 

모든 것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음식 역시도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개발되고, 새로운 맛과 향의 조화가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에 따른 조화로운 와인을 찾는 작업도 와인을 좋아하고 즐기는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재밌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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