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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위로가 되어줄 편안한 친구 - 르 그랑 피노누아 본문
7인7색 와인의 월요일을 책임질 그 남자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와인은 항상 쉬운 상대였습니다. 비위를 맞추기 위해 쩔쩔매야 하는 까탈스런 상사도 아니었고, 말이 샐까 두려워 입조심해야하는 커다란 입을 가진 동료도 아니었죠.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편안하게 입던 옷 그대로, 운동화 신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랬던 내 친구 와인이 어느 날인가부터 앞에 서면 은근 긴장되고, 눈을 똑바로 마주칠 수 없는 부담스런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가만히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와인에게 딴 맘을 품었던 게 이유였던거죠. 와인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와인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속속들이 다 알고자 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문제점을 알았으니 이제 고쳐야겠죠?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맘 먹었습니다.
평범한 일상 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내 친구 와인을 되찾기로 했죠. 삶속에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자극들과 연결될 수 있는 와인에 촉을 세운지 불과 몇 시간, 드디어 친구는 저에게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그 친구는 소설책 속에 숨어있었습니다.
얼마 전 선물받은 '템테이션'이라는 소설책. 이야기 속 주인공은 이 세상에서 성공이라 불리는 모든 것을 거머쥐자마자 몰락하게 됩니다. 몰락한 주인공은 성공했을 때의 주인공보다 저에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실루엣만 스쳐봐도 척 알아보는 유명 인사같은 와인들만 마시던 주인공은 그다지 인간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영하 10도의 기온에 두툼하게 얼어붙은 눈쌓인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주인공이 저렴한 피노누아 와인 두 잔으로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장면에서 진솔한 삶을 느낄 수 있었던 거죠.
소설 속에 숨어 저에게 신호를 보낸 그 친구는 바로 르 그랑 피노누아(Le Grand Pinot noir)입니다.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한 와인은 아니지만, 이 친구라면 그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위로가 되어줄 편안한 친구 역할을 잘 해줄거라는 믿음으로 골라봤습니다. 중간 이상의 기분좋은 산미와 부드럽게 숙성된 타닌이 균형감있게 다가오는...피노누아는 무조건 비싸야한다는 고정관념을 보기좋게 깨뜨려주는 그런 친구입니다.
한 주의 시작...혹시 월요병에 걸린 분들 계시다면 부담없이 이 친구와 함께 해보시길 권합니다.
<삼청동 쉐 시몽(Chez Simon) 오너 쉐프 심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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