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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숙성 보르도 와인의 매력 - 삐숑 바롱 1996 본문
보르도하면 누구나 먼저 메독의 그랑 크뤼 와인을 떠올립니다. 삐숑 바롱(Pichon Baron)은 60여개의 그랑 크뤼 와인 중에서도 1등급에 가깝다하여 수퍼 세컨드라고들 합니다. 뽀이약의 남쪽 끝에 위치한 삐숑 바롱의 포도밭은 샤또 라뚜르와 가까이 있습니다. 까베르네 쏘비뇽의 블렌드 비율이 80%에 이르러 메독에서도 가장 힘이 있는 장기숙성용 와인으로 손꼽힙니다.
작년에 90년대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 몇 개를 테이스팅할 때 뽄테 까네 95, 그루오 라로즈 96, 지스꾸르 95와 함께 삐숑 바롱 1996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매력들을 보여주었지만 그 중에서 단연 압권은 삐숑 바롱이었습니다. 잘 숙성된 뽀이약 특유의 흙 느낌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신선한 과일 향은 15년 가까운 숙성의 세월을 무색케하고 있었습니다. 입안 가득한 깊고 복잡한 향은 와인을 목에 넘기고도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 또한 모난 구석 없는 잘 다듬어진 균형감과 함께 단단한 구조는 여전했죠. '그래 이거야. 사람들이 메독의 그랑 크뤼 와인에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잘 숙성된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의 매력은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장기숙성된 와인은 가격이 너무 높고, 또한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죠. 삐숑 바롱 96은 현지에서 150-200 유로 정도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물론 국내에서는 더 비쌀 것입니다. 그나마 찾을 수 있으면 다행이겠죠. 이러한 가격은 일반 와인 애호가들이 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와인이 최초에 판매될 당시에는 20-30 유로 수준이었습니다. 큰 부담없는 가격이죠.
우리도 유럽의 와인애호가들이 하는 대로 장기숙성용 와인을 가격이 높지 않은 초기에 사서 장기숙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면 장기숙성된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의 매력을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텐데… 이런 와인 문화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폭넓게 확산될 수 있으면 좋겠고, 저도 나름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Salon du Vin Seoul, 르끌로 대표 박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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