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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어야 맛있는 와인 - 프루노또 바롤로 본문
어떤 책을 읽다 이런 글귀를 봤습니다.
"철든 사람들은
시험보고, 입학하여, 졸업하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 꼬박꼬박 월급을 받지만,
철없는 사람들은 학교를 때려치우고
직업 없이 백수로 빈둥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만들고 철든 사람들을 고용한다."
마치 철든 사람을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묘사하였습니다.
하지만 철(哲)든다는 것은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세상 풍파에 이리 저리 시달리면서도 견디고 이겨낸 그들이 얻게 된 철은 그저 단단하기만 한 강철이 아니라 세상 이치에 밝은 그런 철이 아닐까요? 철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차린 게 아니라, 철없던 사람이 철이 들어 회사를 만든 것이지요.
와인도 그런 것 같습니다. 코르크를 따자마자 마시면 뭔가 딱딱하고 톡톡 튀는 맛이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와의 접촉을 통해 철이 들면, 부드러우면서 강건한 풍미가 피어 오릅니다. 이런 과정을 아에라씨옹(aeration), 즉 공기와의 접촉이라고 합니다. 아에라씨옹이 와인에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와인에 따라 공기와 접촉하는 시간을 다르게 해야 합니다.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2시간 이상 진행되기도 합니다. 결국 세상 풍파를 이겨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인 셈이죠. 이겨냈을 때 철이 드는 거니까요.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프루노또 바롤로(Prunotto Barolo)는 1시간 이상의 아에라씨옹이 필요한 와인입니다. 오픈 직후의 맛은 덜 익은 풋과일을 입안 가득 베어 문 느낌입니다. 하지만 산화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와인은 다양한 풍미를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와인도 사람처럼 철이 들어야 맛이 나나 봅니다.
<삼청동 쉐 시몽(Chez Simon) 오너 쉐프 심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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