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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고대그리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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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나쁘지만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다." 그리고 "와인은 폴리페놀 성분 때문에 건강에 좋다."라는 이야기가 미디어에 종종 나오곤 합니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같은 양의 육류를 섭취하더라도 심혈관 질환에 덜 걸린다는 프렌치 패러독스를 비롯해 적당한 와인이 장수에 도움을 주고, 성생활에도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죠.고대 그리스에서도 와인은 술인 동시에 몸에 좋은 약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적당한 양의 와인을 마시는 것은 건전한 생활 습관인 동시에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기여하는 요소로 인정받았죠.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에우리피데스는 다음과 같은 시를 통해 와인의 효과를 칭송했습니다. 그의 선물에 흠뻑 취하면괴로워..
그리스인들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와인이 갖는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극작가인 아이스퀼로스(Aeschylos)는 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죠. "청동이 겉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와인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스인들은 좌담회에서 본심을 감추지 않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와인은 이러한 분위기를 유도하는 매개체로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부드럽게 해주는 선까지만 마시고,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는 자제력을 시험하는 도구로서 와인을 사용하기도 했죠.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문명의 척도라고 생각했지만, 물에 희석해서 약간 기분좋을 정도로만 마시는 것을 문명인이 갖춰야 할 교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와인을 물에 희석하지 않고 그냥 마시거나,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하거나..
오늘날 와인의 품질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도 그들이 마시는 와인에 등급을 매겼습니다. 기원전 5세기 경에 그리스 최고의 와인은 키오스 와인이었고, 그 뒤를 이어 타소스 섬의 와인이 고급 와인으로 손꼽혔습니다. 또 그리스인들은 자국의 와인은 아니지만 이집트산 마레오틱 와인을 최상급으로 여기기도 했죠. 또한 알렉산드리아 남서부에서 나오는 타이니오틱과 나일강 삼각주 한 가운데에서 나오는 세베니스 와인 역시 그리스인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그리스의 와인 생산자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와인의 명성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어 타소스 와인의 경우엔 다음과 같은 규정을 지켜야 했죠. - 특정 크기의 용기에 담아 물을 섞지 않은 채로 판매할 것. 이는 와인의 품질을..
고대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와인을 즐겼는지 엿볼 수 있는 풍경으로는 상류층 남성들 사이에서 저녁 만찬을 끝낸 후 벌이는 좌담회를 들 수 있습니다. 좌담회를 뜻하는 심포지엄(symposium)이란 말이 그리스어인 심포시온(symposion)에서 나온 것이고 이는 ‘함께 마신다’란 뜻입니다. 그러니 좌담회에는 와인이 빠질 수 없었죠. 좌담회를 벌이는 장소에는 와인과 물을 섞을 때 쓰는 ‘크라테르’라는 단지가 있고, 좌담회의 주최자는 이 단지에 물을 넣고 와인을 붓습니다. 이때 와인에 섞는 물의 양을 정하는 것은 주최자의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물과 와인의 비율은 보통 3 대 1, 5 대 3, 3대 2였는데, 중요한 것은 비율이지 도수가 아니었다는군요. 그래서 고급 와인을 쓰면 도수가 올라가고, 저급 와인을 쓰면..
기원전 1,000년까지만 해도 와인은 소수 계층을 위한 특별한 술이었습니다. 우선 가격만 해도 당시 와인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맥주와 비교할 수 없이 비쌌죠. 또한 와인에 종교적, 문화적 의미가 결부되면서 와인은 지배층을 위한 술로 자리잡았습니다.고대에는 술이 일상적인 음료였습니다. 칼로리와 영양소의 공급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알코올로 인해 다른 음료보다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이 가능한 식품이 술이었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도움을 준 술은 ‘액체빵’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맥주였습니다.왜 와인은 널리 보급되지 못했을까? 종교, 문화,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중동과 지중해 동부, 이집트가 포도 재배의 한계선이었던 것도 주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포도 재배에 딱 알맞은 그리스..
지금도 와인 산업은 수익이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시절에도 상당히 수지 맞는 산업이었나 봅니다. 그리스인들은 유럽 각지로 와인을 수출했는데, 우리는 오늘 날 유럽 전역에서 발굴되는 수 천개의 암포라를 통해 그들의 와인이 뻗어 나간 지역을 짐작할 수 있죠.1세기에 오크통이 등장하기 전까지 와인 운반용으로 가장 널리 쓰인 용기는 암포라라고 부르는 토기입니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암포라의 용량은 25~30리터 정도이며, 대체로 길죽한 외형에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있어 두 사람이 한 쪽씩 잡고 날랐습니다. 바닥은 뾰족해서 똑바로 세우기 힘들었기 때문에 버팀대를 쓰거나 나무 상자에 넣거나 모래를 깔고 세워두기도 했죠. 와인 뿐만 아니라 기름과 올리브, 곡물 등을 실어 나를 때도 암포라를 썼다고..
고대 그리스의 와인 산지는 처음엔 도시 주변에 있다가 나중엔 주로 섬이나 해안가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다를 통해서 와인을 운송하기 쉬웠기 때문이죠. 와인 생산지의 융성 여부는 의외로 교통의 편의성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르도 와인이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지롱드 강을 통해 와인을 수출하기 쉬었기 때문이며, 랑그독 와인의 생산량이 급증한 이유로도 19세기 후반의 철도 가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타소스섬의 포도밭은 290,000 제곱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는데, 수 많은 남녀 노예와 일꾼들이 포도 농사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그리스의 포도 재배법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격자시렁을 설치해서 포도의 성장을 돕는 동시에 관리와 수확이 용이하도록 했고, 전문적인 가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