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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맛들린 로마인들이 와인 사업의 수익성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정복지에 포도밭을 가꾸기 시작하게 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알프스 산맥을 넘어 남부와 중부 유럽을 석권해 가는 로마군의 군화 자국을 따라 포도나무와 와인도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로마군이 정복지마다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든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군인들의 건강을 위한 이유가 더 컸죠.요즘에도 상수도 시설이 좋지 않은 지역에 가서 물을 잘못 마시게 되면 배탈이 날 수 있습니다. 로마군이 알프스 너머 유럽 대륙을 정복해 나갔던 그 옛날에는 이러한 상황이 더욱 심했겠죠. 만약 병균이 우글거리는 물을 잘못 마셨다가 부대 안에 이질이라도 퍼지는 날엔 군대의 전투력을 몽땅 잃어버리는 일이..
콜루멜라의 대리석상 대 정치가 카토도 농업론에서 와인에 대한 내용을 썼지만, 로마인들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대한 체계적인 문서를 많이 저술했습니다. 그들이 남긴 와인 양조에 대한 방법들을 오늘날의 와인 산업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에서 와인에 관한 가장 방대한 기록을 남긴 콜루멜라(Columella)는 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 포도나무 사이의 알맞은 간격 - 와인의 종류에 따른 적합한 생산지들 - 버팀목 세우는 방법과 일꾼 한 명이 하루에 세울 수 있는 버팀목의 양 - 포도 농사에 필요한 일꾼의 수 - 노예의 식대 - 포도 품종에 따른 와인의 양과 질, 그리고 선택의 문제 로마의 문필가들..
카토 아저씨. 지중해를 앞마당 연못(?)으로 만들어버린 로마는 당대의 거의 모든 와인 문화를 흡수, 통합하여 발전시켰습니다. 기원전 3~4세기 무렵에는 일찌기 그리스인들이 개간해 놓았던 이탈리아 남부의 포도밭을 접수해 와인 산업의 토대를 단단히 굳혔죠. 기원전 2세기의 로마 정치가 카토(Cato)는 이란 책을 쓰면서 “포도 재배는 이제 생계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가 가내 소비가 아닌 산업의 형태를 띠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후 카르타고와의 3차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리스와 발칸 반도 북쪽,이집트, 프랑스, 스페인, 소아시아 반도까지 정복한 로마는 지중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충실한 모범생은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인이었습니다.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부족한 편이었지만, 로마인은 기존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죠. 그들이 그리스 문명에서 배운 것 중에는 당연히 와인도 있었습니다.일찌기 그리스인들은 바다 건너 이탈리아 반도를 주목했고, 반도의 남단에 여러 개의 식민도시를 세웠습니다. 식민도시 근처엔 당연히 포도밭을 개간하여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들었죠. 이탈리아의 토질이나 지형, 기후가 포도 재배에 적합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이탈리아를 외노트리아(Oenotria), 즉 ‘와인의 땅’이라 불렀습니다. 그리스인들의 와인 생산 기술은 교류를 통해 로마로 전파되었고, 로마의 와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처럼 로마의 ..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나쁘지만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다." 그리고 "와인은 폴리페놀 성분 때문에 건강에 좋다."라는 이야기가 미디어에 종종 나오곤 합니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같은 양의 육류를 섭취하더라도 심혈관 질환에 덜 걸린다는 프렌치 패러독스를 비롯해 적당한 와인이 장수에 도움을 주고, 성생활에도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죠.고대 그리스에서도 와인은 술인 동시에 몸에 좋은 약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적당한 양의 와인을 마시는 것은 건전한 생활 습관인 동시에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기여하는 요소로 인정받았죠.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에우리피데스는 다음과 같은 시를 통해 와인의 효과를 칭송했습니다. 그의 선물에 흠뻑 취하면괴로워..
그리스인들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와인이 갖는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극작가인 아이스퀼로스(Aeschylos)는 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죠. "청동이 겉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와인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스인들은 좌담회에서 본심을 감추지 않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와인은 이러한 분위기를 유도하는 매개체로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부드럽게 해주는 선까지만 마시고,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는 자제력을 시험하는 도구로서 와인을 사용하기도 했죠.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문명의 척도라고 생각했지만, 물에 희석해서 약간 기분좋을 정도로만 마시는 것을 문명인이 갖춰야 할 교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와인을 물에 희석하지 않고 그냥 마시거나,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하거나..
오늘날 와인의 품질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도 그들이 마시는 와인에 등급을 매겼습니다. 기원전 5세기 경에 그리스 최고의 와인은 키오스 와인이었고, 그 뒤를 이어 타소스 섬의 와인이 고급 와인으로 손꼽혔습니다. 또 그리스인들은 자국의 와인은 아니지만 이집트산 마레오틱 와인을 최상급으로 여기기도 했죠. 또한 알렉산드리아 남서부에서 나오는 타이니오틱과 나일강 삼각주 한 가운데에서 나오는 세베니스 와인 역시 그리스인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그리스의 와인 생산자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와인의 명성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어 타소스 와인의 경우엔 다음과 같은 규정을 지켜야 했죠. - 특정 크기의 용기에 담아 물을 섞지 않은 채로 판매할 것. 이는 와인의 품질을..
고대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와인을 즐겼는지 엿볼 수 있는 풍경으로는 상류층 남성들 사이에서 저녁 만찬을 끝낸 후 벌이는 좌담회를 들 수 있습니다. 좌담회를 뜻하는 심포지엄(symposium)이란 말이 그리스어인 심포시온(symposion)에서 나온 것이고 이는 ‘함께 마신다’란 뜻입니다. 그러니 좌담회에는 와인이 빠질 수 없었죠. 좌담회를 벌이는 장소에는 와인과 물을 섞을 때 쓰는 ‘크라테르’라는 단지가 있고, 좌담회의 주최자는 이 단지에 물을 넣고 와인을 붓습니다. 이때 와인에 섞는 물의 양을 정하는 것은 주최자의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물과 와인의 비율은 보통 3 대 1, 5 대 3, 3대 2였는데, 중요한 것은 비율이지 도수가 아니었다는군요. 그래서 고급 와인을 쓰면 도수가 올라가고, 저급 와인을 쓰면..
기원전 1,000년까지만 해도 와인은 소수 계층을 위한 특별한 술이었습니다. 우선 가격만 해도 당시 와인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맥주와 비교할 수 없이 비쌌죠. 또한 와인에 종교적, 문화적 의미가 결부되면서 와인은 지배층을 위한 술로 자리잡았습니다.고대에는 술이 일상적인 음료였습니다. 칼로리와 영양소의 공급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알코올로 인해 다른 음료보다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이 가능한 식품이 술이었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도움을 준 술은 ‘액체빵’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맥주였습니다.왜 와인은 널리 보급되지 못했을까? 종교, 문화,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중동과 지중해 동부, 이집트가 포도 재배의 한계선이었던 것도 주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포도 재배에 딱 알맞은 그리스..
지금도 와인 산업은 수익이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시절에도 상당히 수지 맞는 산업이었나 봅니다. 그리스인들은 유럽 각지로 와인을 수출했는데, 우리는 오늘 날 유럽 전역에서 발굴되는 수 천개의 암포라를 통해 그들의 와인이 뻗어 나간 지역을 짐작할 수 있죠.1세기에 오크통이 등장하기 전까지 와인 운반용으로 가장 널리 쓰인 용기는 암포라라고 부르는 토기입니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암포라의 용량은 25~30리터 정도이며, 대체로 길죽한 외형에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있어 두 사람이 한 쪽씩 잡고 날랐습니다. 바닥은 뾰족해서 똑바로 세우기 힘들었기 때문에 버팀대를 쓰거나 나무 상자에 넣거나 모래를 깔고 세워두기도 했죠. 와인 뿐만 아니라 기름과 올리브, 곡물 등을 실어 나를 때도 암포라를 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