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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식물을 DNA 단위까지 쪼개어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든 기록이 분실되었기 때문이든 기원이 분명치 않았던 품종의 혈통을 확실히 규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진판델이 사실은 이탈리아의 프리미티보, 크로아티아의 시를예낙(Crljenak)과 같고, 뮐러-투르가우의 모계 품종인 리슬링과 부계 품종인 마들렌 로얄(Madeleine Royale)이 정확히 무엇이며, 카베르네 소비뇽을 만든 것은 카베르네 프랑과 소비뇽 블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또한 피노(Pinot)에 여러 가지 매우 독특한 형태, 피노 옥세루아(Pinot Auxerrois), 피노 블랑(Pinot Blanc), 피노 그리(Pinot Gris), 피노 ..
기원전 1,000년까지만 해도 와인은 소수 계층을 위한 특별한 술이었습니다. 우선 가격만 해도 당시 와인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맥주와 비교할 수 없이 비쌌죠. 또한 와인에 종교적, 문화적 의미가 결부되면서 와인은 지배층을 위한 술로 자리잡았습니다.고대에는 술이 일상적인 음료였습니다. 칼로리와 영양소의 공급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알코올로 인해 다른 음료보다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이 가능한 식품이 술이었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도움을 준 술은 ‘액체빵’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맥주였습니다.왜 와인은 널리 보급되지 못했을까? 종교, 문화,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중동과 지중해 동부, 이집트가 포도 재배의 한계선이었던 것도 주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포도 재배에 딱 알맞은 그리스..
미켈레 키아를로 와이너리의 설립자인 미켈레 키아를로(Michele Chiarlo)씨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와인 철학은 떼루아의 성격을 충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품종으로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오크나 우디 계열의 향이 강조되지 않아야 하며, 우아하고 풍성한 미감은 갖추되 부담스럽지 않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와인이건 음식이건 만드는 사람의 철학이 담긴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들과 비교해서 좀 다르긴 합니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하얀 네비올로라는 별칭을 가진 꼬르테제 100%로 만든 가비 르 마르네(Gavi Le Marne)는 미켈레 키아를로의 와인철학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잔에 따를 때 산발적으로 터지는 담황색 기포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운 여름날 기분좋은 청량감을 선사..
친동생처럼 여기는 오래된 친구가 결혼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요." 라는 말을 노래 부르듯 하다가 누가 봐도 성실하고, 건강하고, 인상 좋은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신혼 여행 중에 사왔다며 바리바리 싸온 소품들을 내밀어 놓으며 "(신랑이랑) 결혼하게 돼서 너무 좋아요." 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데 마치 친동생을 시집 보낸 것처럼 마음이 뭉클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더군요. 결혼을 하면 그 동안 힘들게 다녔던 회사를 그만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가정 경제를 신랑에게만 맡겨 부담을 주는 것은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면서 "다닐 수 있을 때까지 회사를 다니겠어요" 하는 말과 함께 요래조래 살림을 꾸려가려고 한다는 계획을 듣고 있자니 새로운 인생..
제2회 열린와인스쿨이 6월 14일 오전에 이철헤어커커 본사 1호 강의장에서 열렸습니다.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방문송 선생님이 강의를 해주셨으며, 동원와인플러스가 함께 참여 했죠. 이번 열린와인스쿨에서 와인 교육을 받으신 분들은 이철헤어커커의 본사 직원 여러분들이었습니다. 평소에 와인에 관심이 많은 분들도 계셨고 술은 거의 안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방문송 선생님의 강의와 시음을 함께 하면서 즐거운 두 시간을 보냈답니다.시음이 끝난 후에 많은 분들이 질문을 던져 주셔서 와인에 대한 열띤 관심을 읽을 수가 있었는데요, 시간 관계상 더 많은 분들의 질문을 받아주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학구열에 불타는(?) 이날의 모습은 아래의 사진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7월에도 열린와인스쿨이 열립니다.다음 주에 공지가 올라..
보르도에 가서 점심시간에 시끌벅적한 식당에 가면 진한 색의 로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됩니다. 무슨 로제와인이 색이 이렇게 진한가 물으니 로제 와인이 아니라 보르도 끌레레랍니다. 겉보기에는 로제 와인과 많이 닮아 보이나 만드는 방식이나 풍미는 레드 와인에 오히려 가깝습니다. 로제 와인보다 훨씬 더 과일향이 강하고 바디감과 구조를 갖고 있죠. 그렇지만 레드 와인에 비해 훨씬 가볍고 부드럽습니다.로제 와인을 만드는 방식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끌레레는 레드 와인 메이킹과 방식이 같습니다. 단지 색깔과 타닌이 추출되는 스킨 컨택(skin contact) 기간을 레드 와인보다 훨씬 짧게 해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끌레레를 만드는 것이죠.끌레레의 역사는 오래 되어서 수세..
지금도 와인 산업은 수익이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시절에도 상당히 수지 맞는 산업이었나 봅니다. 그리스인들은 유럽 각지로 와인을 수출했는데, 우리는 오늘 날 유럽 전역에서 발굴되는 수 천개의 암포라를 통해 그들의 와인이 뻗어 나간 지역을 짐작할 수 있죠.1세기에 오크통이 등장하기 전까지 와인 운반용으로 가장 널리 쓰인 용기는 암포라라고 부르는 토기입니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암포라의 용량은 25~30리터 정도이며, 대체로 길죽한 외형에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있어 두 사람이 한 쪽씩 잡고 날랐습니다. 바닥은 뾰족해서 똑바로 세우기 힘들었기 때문에 버팀대를 쓰거나 나무 상자에 넣거나 모래를 깔고 세워두기도 했죠. 와인 뿐만 아니라 기름과 올리브, 곡물 등을 실어 나를 때도 암포라를 썼다고..
때로는 나무에서 정상적인 것과 무척 다른 슈츠나 잎, 꽃, 열매 등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이 상태를 키메라(Chimeras)라고 합니다. 가장 좋은 예는 잡색을 띤 식물(예를 들어 흰색과 녹색이 얼룩덜룩한 잎사귀)이나 가시가 없는 블랙베리, 색상이나 모양이 다른 과일이고 포도의 경우엔 껍질과 과육이 모두 붉은 테인투리어(Teinturier) 품종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종종 바이러스 감염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포도나무에서 가장 흔한 변이는 더 크거나, 더 작거나, 모양이 다르거나, 색상이 다른 것처럼 다른 모습을 한 열매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변이를 보이는 송이가 달린 케인에서 가지를 자르는 경우 완전히 새로운 품종이 나올 수도 있습니..
2005년은 보르도에 축복이 내려진 한 해였습니다. 하늘의 은총이 보르도 구석구석으로 퍼져 포도알은 여물고 익어갔지요. 물론 훗날 전설로 기억될 와인들이 생산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엔 축복이었던 2005년이 이탈리아에게는 지옥이었습니다. 우선 비가 내려 포도가 충분히 달지 않았습니다. 산도도 신선하지 못했죠. WS의 빈티지 차트를 살펴보면 보드도의 2005년 빈티지는 98, 99점을 받았으나 이탈리아 투스카니 2005년 빈티지는 87~91점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좋지 않았지요.하늘의 재앙에 이탈리아 와이너리들은 큰 시름에 빠졌습니다. 세계 최고의 와이너리라 불리는 가야(GAJA)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야에서는 이탈리아 품종인 '산지오베제 그로쏘'로 최고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다양한 클론을 심고 싶어하는 재배자는 좋은 포도를 선별하여 꺽꽃이로 증식한 ‘셀렉션 마살레(Sélection massale)’에서 나온 포도나무를 선택합니다. 접지 종묘장은 오랫동안 좋은 와인을 생산한 이력이 있는 포도원으로부터 접수(接穗, scion)를 공급받고, 재배자들은 자신의 포도원이나 이웃의 포도원에서 가지를 얻어 그것을 종묘장으로 보내 접붙이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이용하면 새롭게 나무를 심은 포도원은 모체가 되는 포도원에서 나온 다양한 클론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그 포도원에서 발견되는 스타일과 맛의 다양성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죠. 어떠한 경우든 이렇게 공급받은 나무는 바이러스 검사를 거쳐야 합니다. 대량 생산은 구대륙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가 긴 포도원이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