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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라는 제목의 수필책을 읽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 나오더군요. 서머셋 모엄의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상습 결혼사기범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그는 길고 살점이 별로 없는 코에 옅은 하늘색 눈을 가진, 시든 듯한 자그마한 남자였다. 피부색은 나쁘고 주름이 많아 쭈글주끌했다. 나이가 몇 살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서른 정도로도 예순 정도로도 보인다. 튀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고 내세울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남자였다. 가난한 사람이란 건 분명했지만, 의외로 차림새는 단정했다." 열한 번이나 중혼을 한 희대의 바람둥이, 그 꼴을 묘사한 것치고는 참으로 빈상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꼴값과 상관없는 인물이 바람둥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와인 중에도 화..
조셉 두르엥 생뜨니(Joseph Drouhin SANTENAY). 조셉 두르엥도 처음이고, 생뜨니도 처음입니다. 여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웬만하면 집에서 와인을 마시는 일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그날 봤던 영화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어찌나 와인을 맛있게 마시던지. 여름에 대처하는 다이어터의 자세를 망각한 채 고기 주섬주섬, 와인 주섬주섬을 실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라 고기 양과 비스무리하게 채소도 구워먹을 양으로 큰 접시에 한 가득 버섯, 애호박, 아스파라거스, 가지, 파프리카, 양파 등을 담아냈죠. 그런데 이 와인, 여름 다이어터의 와인으로 손색이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깨끗하고 하늘거리는 듯 가벼운 바디감이 좋습니다. - 두껍고, 진한 질감의 와인은..
서울에서 좋은 샴페인을 마실 기회가 없다가 출장 중에 모처럼 훌륭한 샴페인을 만났습니다. 미셸 고네(Miche Gonet)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알고 보니 고급 샴페인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샴페인 프로듀서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형 샴페인 하우스의 샴페인은 대부분 포도를 재배하는 포도 경작자들에게서 포도를 구입하여 샴페인을 만드는데 반해 미셸 고네는 자기 포도 밭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만 사용해서 샴페인을 만드는 소위 재배 생산자(Grower Producer)입니다. 포도밭도 최고급 샤도네 밭들이 있는 꼬뜨 드 블랑의 아비즈(Avize), 오제르(Oger) 등에 집중되어 있죠. 생산량이 크지 않다 보니 아직 한국 시장에는 소개가 되지 않았더군요. 이번에 테이스팅한 것은 뀌베 프리스..
스핑크스나 피라밋 같은 위대한 유적을 남긴 고대 이집트인은 와인의 역사에도 인상 깊은 자취를 남겼습니다. 이집트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천년 경으로 추정됩니다. 이 당시 이집트인들의 각종 예식에서 와인은 고귀한 술로써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왕실에서는 나일강 삼각주(Delta) 지대에 전용 포도원을 만들어서 와인을 공급 받았습니다. 투탕카멘(Tutankhamun)왕의 무덤에서 왕실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상인이 바친 36개의 항아리가 발굴되었는데, 이중 여섯 개는 왕의 개인 포도원에서 만든 와인을 채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와인 산업은 초창기부터 아주 번창했고, 적어도 고왕국 제 3왕조 시기(기원전 2650–2575)에는 가나안 지방과 활발하게 와인 무역을 하고..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이번 테이스팅 세션의 기록은 뒤늦게 작성되었습니다. 한 번 게으름을 부렸더니 흐트러진 정신머리를 잡아오기가 쉽지 않더군요. 당시에는 카메라 메모리도 챙겨가지 않아 결국 촬영은 갤럭시 S2. 사진이 산만하고 집중이 되지 않아도 기계의 역량이며, 정신머리 없는 작가의 소양이니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달 전 일이었으므로 맛과 향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리란 기대는 멀리 보내버리시고, 순전히 멤버들의 테이스팅 노트에 기초한 정리에 의의를 두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정신없는 기록도 우리의 역사의 조각 중 하나니까요(라고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ㅁ-;) 첫번째 선수는 아몬-라(AMON-Ra) 2006. 호주 바로싸 밸리의 쉬라즈 와인입니다. 이 와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
지면 아래 부분, 즉 뿌리 시스템은 꽤 넓게 퍼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뿌리는 지표면에서 3-4미터, 혹은 그보다 더 깊이 뚫고 내려가기도 합니다. 뿌리 시스템의 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는 뿌리줄기(rootstock)의 종류, 토양의 상태, 수분 공급이나 기후가 중요합니다. 뿌리는 해당 식물을 흙 속에 고정시켜주고, 토양으로부터 나무에 양분과 수분을 공급하는 통로가 되며, 수분과 양분의 공급이 일정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그것을 저장하기도 합니다. 처음 포도나무를 심으면 뿌리의 숫자는 5-10개이며 대체로 10cm 정도로 다듬어져 있습니다. 나무를 심은 첫 해에 지면 위에서 나무가 활발히 자라는 동안 뿌리 역시 비슷하게 바쁜 한 해를 보내지요. 성장 조건(토양, 양분, 수분)이 적합하면 그 해가 끝..
‘공부는 잘하니? 명문대 가야 성공하지!’ 한국의 한국인이면 누구나 초등학교부터 귀에 못박히게 들어오던 얘기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어쩌면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자연적으로 스펙에 연연하는 삶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짧고도 긴 고3 시절을 끝내고 1998년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군대를 갔다와 보니 세상은 팍팍해져 있었습니다. 취업하기도 쉽지 않았지요. 학교는 물론 과도 좋아야 되고, 토익점수가 없으면 안됩니다. 영어회화도 잘 해야지요. 그러고 보니 주변 사람이 다들 어학연수를 떠납니다. 교환학생을 가는 친구도 해외로 대학을 가는 친구들도 보입니다. 이력서에는 봉사활동을 적는 칸도 있습니다. 다시 다들 칸을 채우기 위해 봉사활동을 떠납니다. 입양아를 돕기도 하고, 국가기관에서 일하기도 하며, 다시 해외로 나..
쥐라 지역의 제일 유명한 와인을 하나 꼽으라면 뱅존을 들 수 있는데요, 그 중 샤또 살롱은 단연 으뜸으로 쳐줍니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뱅존은 사바냉이라는 품종으로 사용하는데 양조 방법 또한 독특합니다. 먼저 사바냉을 수확한 뒤 버건디 배럴에서 숙성시킵니다. 이때 일부러 산소와 효모를 노출시키게 되면 쉐리를 양조할 때 생기는 플로르라는 막이 생기는데요, 그렇게 6년 3개월 동안 배럴 숙성 후 병입합니다. 병입은 전통적으로 클라블랭이라는 620ml 사이즈의 작고 통통한 병을 사용하는데 샤또 살롱에게만 병에 각인을 새길 수 있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산화를 시킨 상태에서 오랜 시간 오크 숙성을 시키기 때문에 보관 또한 길게는 한달까지도 거뜬히 갈 수 있는 샤또 살롱. 어제 마신 도멘 베르테 본데 샤또 살롱(..
기원전 814년 페니키아인들은 북아프리카에 카르타고를 건설합니다. 또 이베리아 반도와 발레아레스 제도에도 식민지를 건설하지요. 그들이 마시고 팔기 위해 거주지 주변에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만들었던 와인 생산지에서는 오늘날에도 스페인 사람들이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요, 발데페냐스(Valdepeñas), 카탈루냐(Cataluña), 도우루(Douro), 에브로(Ebro) 강 유역 등이 대표적인 곳입니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가장 큰 식민도시 중 하나였던 카르타고는 와인 생산과 수출로도 유명했습니다. 특히 바그라다스 강(Bagradas river) 유역에서 만든 와인은 당시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는군요. 카르타고는 와인 양조 ..
모든 포도나무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밑동(trunk), 케인(cane), 슈츠(shoots)와 잎(foliage)으로 구성된 지면 윗부분과 지면 아랫부분인 뿌리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대부분의 포도나무는 사실상 지면 아랫부분이 윗부분보다 훨씬 큽니다. 지면 윗부분은 가장 먼저 밑동이 있고 거기에서 케인이나 스퍼(spur)가 나오며 여기에 열매가 맺힐 가지, 즉 착과(着果) 가지가 자랍니다. 나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지름이 넓어지는 밑동은 단단한 나무 구조물로써 나무를 지면으로부터 띄워주고, 열매가 맺힐 가지를 지탱해줍니다. 또한 뿌리가 토양으로부터 흡수한 수분과 양분을 잎과 열매와 가지에 전달하고, 잎에서 생산한 탄수화물을 뿌리로 보내주는 양방향 통로를 제공합니다. 밑동에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