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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쉐시몽 앞, 작은 공간에 비옥한 흙을 공수해 차곡차곡 깔고, 거기에 청양고추 모종을 심어 텃밭을 일군적이 있었습니다. 농약을 안뿌리고 고추농사를 짓는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지만, 레스토랑 앞에서 키우는 고추에 농약을 뿌린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자연스럽게 농약 없이 키워 보았습니다. 첨엔 이름 모를 잡초 마냥 멋대가리 없이 자라더니, 어느 새 파란 고추가 듬성듬성 매달리기 시작하더군요. 음식을 만들다가 고추가 필요하면 문을 열고 잠깐 나가서 고추를 따서 바로 씻어서 파스타의 매운 맛을 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화학비료나 농약없이 키운 유기농이라는 이미지 덕분이었는지 손님들의 긍정적인 반응도 나왔습니다. 내친 김에 로즈마리와 바질도 심어서 키우기 시작했죠. 요즘 뜨는 ..
지금 표고 버섯은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능이나 송이 버섯만큼 귀하지는 않지만 밥상의 향기로운 식재료 중 하나지요. 3~4월이면 표고의 주산지인 장흥에서는 봄 표고가 수확됩니다. 그리고 5월 경이 되면 이것이 건조되어 장기 보관이 가능하게 되죠. 말린 표고를 불려서 사용하면 감칠 맛과 향이 배가 되지만 갓 수확한 생 표고의 향과 질감은 수확 철에만 잠깐 즐길 수 있는 싱그러운 경험입니다. 봄과 가을에 주로 수확되는 노지 표고는 가을보다는 봄에 수확한 것이 향이 훨씬 좋다고 합니다. 남도에 꽃구경하러 다니다가 지역의 장에 가 보면 아침에 작업한 표고들을 아주 착한 가격에 한 보따리씩 팝니다. 한 번 먹어나 보라며 손으로 뭉텅 찢어서 소금참기름장을 슬쩍 묻혀 입에까지 넣어 주는 농부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지..
보르도 슈퍼리어 등급 와인은 보르도 와인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으로 통상 저가로 판매되는 대량 생산 와인들입니다. 당연히 와인의 맛도 민밑한게 전혀 매력을 찾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제가 최근 반가운 예외를 발견하고 기뻤습니다. 샤또 브랑 데스판뉴 뀌어(Chateau Brun Despagne Querre)는 1.5헥타르의 아주 작은 밭포도에서 생산됩니다. 보르도 우안의 생떼밀리옹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평균 수령 80년의 오래된 메를로 포도나무 위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포도 나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극히 낮아서 연간 5천병 밖에 생산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생산되는 와인은 그랑크뤼 와인 못지 않게 농축된 향과 풍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주 이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의 만남은 언제나 진리이지요. 아파 죽겠어서 침대와 일체된 사람에게 가장 많이 묻는 문병자들의 질문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이듯이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인간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물론 뒤에 따르는 잉여 양분에 대한 책임은 개인의 문제. 특히나 제게 와인은 맛있는 음식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고백합니다. 아주 단순하게 좋은 고기를 먹을 때에는 레드 와인이 생각이 나고, 좋은 해산물을 먹을 때에는 화이트 와인이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는 일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좋은 고기에는 레드 와인. 바리바리 싸 가지고 갑니다. 흥겹게 먹고, 마십니다. 그러면.. 운전은 누가 합니까? 운전은 소가 합니까? 소는 이미 와인과 XOXO..
금요일 그남자 입니다. 얼마전 한국 와인인 '뱅주'라는 와인이 레드닷과 더불어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IF 디자인 어워드를 패키지 부문 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참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2년전쯤 뱅주를 처음 런칭할 때, 뱅주컴패니의 김민겸사장님과 식사를 한적이 있습니다. 김사장님은 프랑스어로 포도인 VIN에 술주(酒)자를 더한 뱅주(VIN-JU)는 ‘와인도 술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면서 뱅주를 소주잔에 따라주셨죠. 와인도 술이니 아무장소에서나 편하게 마셔야 한다고.. 시간이 흐른뒤 언듯 보니, '뱅콕'이라고 홍대클럽에서 콜라에 뱅주를 타서 마시는 행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이처럼 격식없이 편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게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뱅주는 12개..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요상도 하여 자꾸자꾸 센놈을 찾고 싶어하는가 봅니다. 누가 더 세냐, 누가 더 멋지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되다가 나중에는 '종.결.자.' 라는 이름으로 마침표를 찍었나 싶으면 종결자가 또 자꾸자꾸 나타납니다. 종결이 안 되나 봅니다. 뭔 놈의 종결자가 그리도 많은지... 슈퍼맨과 배트맨이 그들의 적과 열심히 싸우는 걸 보고나서는 생각합니다. 슈퍼맨이랑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겨? 1 대 다수와 싸워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람보와 코만도. 분명 초행길일 수풀이 우거진 정글에서 네비게이션도 없이 잘도 적의 위치를 찾아내고, 그들의 총알은 절대 떨어지지도 않지만 우리는 문득 생각합니다. 람보랑 코만도가 싸우면 누가 이겨? 라이벌 대결은 태평양 건너 ..
드디어 날씨가 많이 풀려 어느덧 봄이 다가오는 것 같죠? 그렇죠? ㅋ 오늘은 고정관념을 탈피한 화이트 와인을 추천합니다. 보르도 하면 흔히들 레드와인을 떠올리는 데요, 저도 참 좋아 합니다.ㅋ 근데 보르도 1855 그랑크뤼 클라세 중에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샤또들이 있는거 아세요? 딸보의 까이유 블랑과 꼬스 데스 뚜르넬의 블랑, 무똥 롯칠드의 블랑, 마고의 블랑, 오브리옹의 블랑, 라그랑쥬 블랑을 비롯해 오늘 소개할 화이트 와인인 랭슈 바쥬 블랑 입니다^^ 보르도 블렌딩은 소비뇽블랑과 세미용 사용해서 만드는데요, 소비뇽블랑하면 흔히들 봄을 떠올리는데 사실 소비뇽블랑 100%의 와인은 산도가 너무 많아 개인적으로 그라브 블랑이나 세미용이 블렌딩된 와인을 선호하는 조쏘 입니다. ^^ 랭슈바쥬 블랑은 굉장..
어제 치즈와 와인의 매칭에 관한 수업이 있었습니다. 저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디만, 수업이 끝난 후 치즈를 시식할 기회는 있었죠. 치즈를 하나하나 먹어보던 제 눈에 띈 치즈 하나. 밝은 미색에 푸른색 줄이 죽죽 들어간 블루치즈였습니다. 제가 그 꼬리꼬리하고 중독적인 맛을 음미하는 순간 제 머리 속에선 노오란 황금빛 와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요즘 피자집 메뉴를 들여다 보면 고르곤졸라 피자가 들어가 있는 걸 종종 봅니다. 고린내 때문에 쉽게 먹기 힘든 고르곤졸라 치즈를 넣은 피자가 어느 새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 된 모양이더군요. 고르곤졸라 피자를 먹을 땐 대개 꿀을 발라 먹는데, 고르곤졸라의 풍미와 달콤한 꿀이 묘하게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꿀과 잘 맞는 고르곤 졸라 피자라면 달콤한 디져트 와인과 ..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작년 연말 음용 기간이 한참 지난 샹볼 뮤지니를 마시고는 향은 다 빠져나가 버려 이것은 차라리 빨간 소주라고 하고 싶은 그 맹맹한, 남은 것이라고는 겨우 스파이시한 향내만 남은 버려도 시원찮을 피노 누아를 맛보며 갑자기 떠오른 이미지. 그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 나오는 주인공의 어머니였다. 분명 고급품이지만 닳아버린 오래된 기모노를 단정하게 입고, 하얗게 쇤 머리카락을 목덜미가 보이게 빗어 올린 몰락한 귀족 여인은 봄 한 철 여린 바람에 하릴없이 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처연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기운이 다 빠져버린 샹볼 뮤지니는 그 귀족 여인을 생각나게 했다. 물론 이후에는 3개월 무이자로 결제한 영수액과 화려한 말솜씨로 와인을 팔아먹은 그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
지난 주 금요일에 열린 테이스팅 세션의 주제는 바이오 다이나믹 와인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일 시음에는 참석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주최자의 친절한 배려로 작은 비커에 보관한 와인을 다음 날 시음할 수 있었습니다. 필립 파칼레를 포함한 8개의 와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와인이 바로 클로 시라 레온입니다. 다른 테이스팅세션 패널분들도 이 와인에 높은 점수를 주셨더군요. 평균 95점을 받아 1등을 차지했습니다. 연한 핑크색 바탕에 꽃이 그려져 있는 예쁜 레이블이 먼저 눈에 띄는데, 포도원 주변의 붉은 토양, 꽃과 관목(garrigues)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와인메이커이자 오너인 마리엔 소리아(Marlène Soria)는 부동산 중개업자로서 일하다가 1973년 남편과 함께 프랑스 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