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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과 와인 시리즈 4. – 도멘 룰로 부르고뉴 루즈 2007 본문
지금 표고 버섯은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능이나 송이 버섯만큼 귀하지는 않지만 밥상의 향기로운 식재료 중 하나지요. 3~4월이면 표고의 주산지인 장흥에서는 봄 표고가 수확됩니다. 그리고 5월 경이 되면 이것이 건조되어 장기 보관이 가능하게 되죠. 말린 표고를 불려서 사용하면 감칠 맛과 향이 배가 되지만 갓 수확한 생 표고의 향과 질감은 수확 철에만 잠깐 즐길 수 있는 싱그러운 경험입니다. 봄과 가을에 주로 수확되는 노지 표고는 가을보다는 봄에 수확한 것이 향이 훨씬 좋다고 합니다.
남도에 꽃구경하러 다니다가 지역의 장에 가 보면 아침에 작업한 표고들을 아주 착한 가격에 한 보따리씩 팝니다. 한 번 먹어나 보라며 손으로 뭉텅 찢어서 소금참기름장을 슬쩍 묻혀 입에까지 넣어 주는 농부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지요. 그렇게 한 번 억지로라도 먹어 보고 나면 표고를 안 살 수가 없게 됩니다. 독한 마음으로 외면하고 갔다가도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표고 향에 가던 길을 되돌아오게 되지요. 결국 표고 버섯 봉다리가 양 손에 주렁주렁.
이 표고를 와인 푸드로 삼아도 참 좋습니다. 생 표고의 겉면만 불에 살짝 익혀서 잘 구워 한 입 크기로 자른 소고기와 함께 통깨를 부숴 참기름에 버무려 곁들여서 와인 한 잔.
저는 도멘 룰로 부르고뉴 루즈(Domaine Roulot Bourgogne Rouge)와 함께 했습니다. 이 와인을 세 병인가 샀는데 그 중 상태가 좋았던 건 단 한 병. 나머지 두 병은 상태가 좀 헤롱거렸네요. 코르크의 상태가 좋지 않아 불안불안 했는데 와인의 향도 가물가물. 그나마 향을 더해주는 표고와 곁들였기에 가물거렸던 와인 향의 자취나마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했답니다. 이 와인의 대표적인 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차마 신선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었던 가벼운 베리 류의 향에 습한 향이 묻어 있는 버섯의 향이 더해지고 씹을수록 고소하게 올라오는 쇠고기 맛.
와인과 푸드 두 가지의 상태가 모두 최상이었다면 더할나위없이 훌륭했겠지만 세상살이가 뭐 그렇게 완벽한 것들의 조화로만 이루어진답니까? 한 놈이 좀 쳐지면, 좀 더 찬 놈이 채워주고 그래서 쳐진 놈, 찬 놈의 조화가 평균을 이뤄내면 그것도 뭐 나쁘지는 않으니까요. 이런 게 마리아주(Mariage)의 바람직한 의의일지도 모르고요. 헤롱거리는 와인을 마신 후, 너무 아전인수격의 해석인가요?
<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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