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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또 데귀유 께르(Chateau d'Aighilhe Querre) 2003 본문

7인 7색 와인투데이

샤또 데귀유 께르(Chateau d'Aighilhe Querre) 2003

와인비전 2013. 5. 4. 10:05


꼬드 드 까스티용 (Cotes de Castillon)은 우리에게 친숙한 와인지역 이름은 아닙니다. 보르도 우안 생떼밀리옹 동쪽에 있는 오래되지 않은 AC인데,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와인들이 생산되는 역동적인 지역으로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죠.

얼마전 데귀유 께르 2003년을 비교 테이스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좌안의 메독, 마고, 뽀이약, 생떼스테프의 알려진 와인들과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까스티용 와인인 데귀유 께르였죠. 코에 댔을 때 느껴지는 놀랍도록 매력적인 향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이제껏 보르도 와인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순수하고 잘익은 과일과 꽃향기가 어우러져 나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좋은 버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이렇게 아름다운 향을 보르도 와인에서 발견하게 되더니… 향기 뿐만 아니라 입안에서 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균형잡힌 우아함과 함께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텍스쳐도 좋았습니다. 목으로 넘기고도 입안에 잔향이 오래 남아 있더군요.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향을 내뿜는 와인을 만들지? 비결이 무얼까? 품종은 여느 우안의 와인들과 마찬가지로 메를로가 80% 정도로 주를 이루고 있고, 15-20년 수령, 2.5 헥타르의 크지 않은 포도밭, 소량 생산(연간 1만병).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은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매력적인 향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독특한 토양에서 오는 것일까요? 보르도의 토양은 크게 자갈밭(gravel) 과 진흙(clay)의 조합입니다. 좌안의 좋은 포도밭은 자갈밭이 많고 우안은 진흙의 구성이 높죠. 진흙은 수분을 잘 함유하고 성질이 차기 때문에 까베르네 소비뇽 보다는 메를로 품종에 잘 맞는다고 합니다. 우안에 메를로가 많은 이유인 것이죠. 

그런데 데귀유 께르의 포도밭은 토양이 특이합니다. 석회석 (limestone) 토양인 것이죠. 깊은 곳의 거대한 석회석 암반 위에 표면에는 진흙이 섞여 있는 석회질 토양이랍니다. 보르도 보다는 부르고뉴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토양인데, 그렇다면 이 특별한 토양이 데귀유 께르의 매력적인 향기를 만들어 내는 범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보르도 와인을 조금 깊게 들여다 보면서 그간 제가 갖고 있던 보르도 와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메독, 생떼밀리옹, 포므롤로 대표되는 보르도의 고급 와인 외에도 매우 매력적이고 가격도 좋은 와인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놀라고 있습니다. 전통과 함께 혁신의 역동성이 살아 있는 보르도를 다시 보게되는 것이죠.

<르 끌로, Salon du Vin Seoul 대표 박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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