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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회 테이스팅 세션 - 즐거운 테이스팅 세션 - 와인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즐깁니다. 본문

테이스팅 세션

제 8회 테이스팅 세션 - 즐거운 테이스팅 세션 - 와인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즐깁니다.

와인비전 2013. 4. 9. 15:00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루 뒤몽은 레이블에 '天地人'을 새겨 넣었죠. 이게 수출용 와인에만 쓰는 레이블이라네요.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는 이 와인이 전설의 와인 평론가인 '칸자키 유타카'의 와인 철학을 설명하는 에피소드로 소개가 되었죠. '와인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만든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단박에 깨달음을 주는 창의적인 말도 아닌 사실 좀 간지러운 말이기도 합니다. 이번 테이스팅 세션에서는 만화 '신의 물방울' 작가인 '타다시 아기(Tadashi Agi)'의 간지러운 말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총 8개의 샤도네이.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열매 맺은 같은 종의 포도가 양조자의 철학과 혹은 시장의 니즈에 맞춰 어떻게 변화해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개별 와인으로 탄생되는가에 대한 공부라고 해 두죠. 


오늘은 바로 들어갑니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만들어진 Kumeu River Estate Chardonnay 2007. (크뮤 리버 에스테이트 샤도네이 2007.) 2006년 빈티지의 경우, WS 90점, RP 90점을 받았고, 2002 빈티지의 경우 2003년 세계 100대 와인에 선정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개의 와인 중 하나입니다. 열대 과일향, 오크 숙성에서 오는 토스티한 향과 더불어 흰 꽃 종류의 신선한 향도 느껴지면서 입안에서는 굉장히 부드러웠고, 특히나 가볍지 않은 바디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개 화이트 와인은 산뜻하고 가벼운 것을 매력으로 삼는다지요. 그런데 가벼워서 매력적인 것이 있는 반면에 큰 바디감으로 매력적인 와인이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더군다나 이 녀석 2시간이 지나도 그 향이 죽지 않더군요. 오히려 처음보다는 섬세한 향이 솔솔 풍기듯 피어나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화이트 와인에 살랑거리는 가벼움과 상큼한 맛을 기대하신다면 놀라실 수도 있구요. 와인을 많이 접하지 못한 분들도 식겁하실 수 있는 것이...저도 처음에 좀 놀란 향이 있었으니.. 뭔가 복합적인 향이 처음에 굉장히 강렬하게 딱! 맡아지는데... 그 냄새가 마치 파마약 냄새 같더군요. 물론 이 향은, 서서히 고양이가 갖고 노는 털실 풀리듯 자연스럽게 열대 과일향, 꽃향, 고소한 견과류와 토스트향 등으로 피어납니다. 이 향을 한꺼번에 맡고 파마약 이라고 말한 저는 역시나 하수가 맞나봅니다.

총 13명이 참석한 테이스팅 세션에서는 평균 88.6점을 받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랑게에서 만들어진 Gaja Langghe Rossj-Bass 2010(가야 랑게 로씨 바스 2010). 2010 빈티지가 WS 92점을 받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나왔던 와인보다는 구조감과 복합적 부분에서 1점씩 낮게 줬습니다. 그리고 테이스팅 세션의 전체 평균 역시 첫 와인보다는 점수가 약간 낮은 87.9점이 나왔구요. 아까 말씀드린 이날 인상적인 와인 두 개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와인입니다. 앞에 나온 와인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앞에 와인은 중년 아저씨스러운 느낌이었다면 이 와인은 나쁜 짓은 하나도 하지 않을 다섯살짜리 귀여운 여자아이 같습니다. 

컬러감도 앞에 와인이 지푸라기 색에 깊이감도 있는 노랑이었다면 이 와인은 훨씬 맑은 개나리 같은 노랑입니다. 바디감도 훨씬 여리여리하고, 화이트 와인에서 기대되는 상큼한 향과 짜릿하게 부숴지는 산도가 아주 발랄합니다.

이 두 와인을 마셔보고 제 느낌을 '신의 물방울' 마냥 풀어보자면,

1. 봄날 공원에 다가가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완고한 중년 아저씨가 있고, 그 주변을 팔랑거리며 뛰어다니는 여자애가 있다고 가정.

2. 겁 없이 팔랑거리며 뛰어다니던 여자애가 입을 꾹 다물고, 얼굴에 표정도 드러나지 않는 중년 아저씨에게 살그마니 웃어주면,

3. 누구도 다가가기 쉽지 않을 듯한 이 아저씨는 처음엔 자기를 보고 웃는 여자애를 의뭉스럽게 바라보다가

4. 그런 아저씨의 모습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에게 동화되어 함께 웃어주는 그런 모습. 

5. 그리고 하나, 둘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저씨의 목소리가 은근 따뜻하고 멋진 울림이 있더란...


물론 여기서 조금 더 '신의 물방울'스러운 배경을 넣자면 갑자기 벚꽃이 마구마구 날려야 합니다. 

와인의 순서를 이리 대조적으로 잡은 진행자의 의도는 뭐였을까요? 혹시 잔인한 4월, 살짝꿍한 서프라이즈로 나름의 힐링 효과를 주려고 한 속 깊은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는지 상상해 봅니다.


자,... 바로 3번 나갑니다.


칠레 카사블랑카 밸리의 Casa Lapostoll Cuvee Alexandre Chardonnay 2008.(까사 라포스톨 뀌베 알렉상드라 샤도네이 2008.) 이 빈티지는 Wine Spectator 90점과 Wine Enthusiast 89점을 받았네요. 

저도 이 와인에 90점을 줬구요. 테이스팅 세션 멤버들의 평균 점수도 90.1점으로 이날 2등을 한 와인입니다. 저는 발란스와 강도(intensity), 여운, 복합미 등 모든 면에서 점수를 높게 줬고, 다른 멤버들도 앞에 나온 와인들보다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3월에 있었던 칠레 와인에 대한 충격에서 아직도 머물러 있는 걸까요? 저는 이 와인이 칠레 와인이라는 사실을 듣고서는 저도 모르게 '칠레는 화이트도 잘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을...화이트'를' 잘 만드는 게 아니라 화이트'도' 잘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에는 역시나 3월의 트라우마가...신선한 복숭아와 배. 그리고 사과향에 살짝 풍기는 견과류 향이 첫 향의 느낌부터 목넘김 이후의 여운까지 아주 기분 좋게 기억되는 와인이었고요. 그래.. 화이트 와인은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야.. 하는 화이트 와인의 좋은 예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멤버 중 한 분은 이 와인을 두고 'well made wine' 이라는 표현을 쓰셨답니다. 

테이스팅에서는 주로 레드 와인이 주제가 되어서 그런지 8종의 화이트 와인을 맛보면서 살짝 흥분된 마음도 있었답니다. 게다가 저 같은 경우는 살짝 정신을 놓은 상태였던데다가 이제는 이 시간에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긴장감도 살짝 풀린 상태여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의견들을 마구마구 투척하면서 여러 번 웃음 폭탄을 터트리게 하는 사고를 쳤답니다. 나중에 한 분은 뜬금없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도 하시는 등... 이 날의 테이스팅 분위기는 화이트 와인마냥 발랄하고 '대책없이' 즐거웠답니다.

와인은 사람이 만듭니다. 그리고 또 사람이 즐깁니다. 긴장이 좀 풀리고, 쉰 소리도 투척하며, 그냥 허허 웃어 버릴 수 있는 시간이 와인을 마시면서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여유가 아니겠어요?


자,.. 이제 이날의 그랑프리를 보시죠..


호주 마가렛 리버의 Handpicked Magaret River Chardonnay 2007.(핸드픽트 마가렛 리버 샤도네이 2007.)

항상 시음기를 쓰면서 뭔가 날카롭고, 명쾌하고, 와인의 캐릭터를 한 방에 딱 잡아낼 수 있는 그런 표현은 언제쯤 가능할까 고민입니다. 그래서 제 글은 항상 빙빙 돌면서.. “이것이 와인 시음기야? 아니면 수필이야?” 하실 수도...저 역시도 제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저는 자기 합리화의 한 방법으로 "와인은 사람이 즐기는 음식이니 사람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요." 라며 우겨봅니다.

이날의 그랑프리였습니다. 저도 91점. 멤버들의 평균점수는 90.5점으로 1등. 

저는 사실 아직까지 와인에 점수를 주는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딱 좋다 싶으면 중간 이상의 어디만큼에 점수를 줍니다. 그리고 우연히 '아, 내가 점수를 짜게 주는구나...'를 깨달았죠. 그래서 멤버들의 시음지를 수거해 와서 제가 준 점수와 다른 분들의 점수표를 보고 나름 공부합니다. 물론 제가 그닥 빠릿하게 순발력이 있는 인간은 아닌데다가 자타공인 '좀 더딘' 인간인지라 금방 성과가 나길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정리하는 시음기 중 와인에 대한 의견과 평가는 멤버들의 시음지를 분석, 정리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이것이 제 주관적인 견해가 아닌 고수들의 평가임을 숙지하시면 와인을 고르시는데 아주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와인을 볼까요? 사진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찍사도 문제지만 이날 카메라를 떨어뜨린 바람에 카메라 상태도 메롱이었어요.) 우선 컬러감이 위의 것들과 다릅니다. 살짝꿍 연녹색의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산도를 확인하실 수 있으실런지... 싱그러운 산도가 이 와인의 특징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제 시음지도 보니 첫 방에 '발랄한 산도'라고 쓰여져있네요. 이를 '톡 쏘는 느낌'이라고 표현한 의견도 있었습니다. 

레몬, 사과향들을 비롯한 시트러스 계열의 향들이 만들어 내는 산미와 더불어 미네랄의 느낌까지.. 혹시 샤블리가 아니냐는 의견이 많이 나왔던 와인이기도 합니다. 또한 샤블리 같으나 샤블리는 아닌, 샤블리 같은 느낌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와인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개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었지요. 이런 익숙함이 평점 90.5의 1등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 그리고 살짝 쉬는 시간..


카메라가 맛이 갔지요. 그래서 자동으로 전원이 차단되는 기능이 안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우연히 건진 풍경들... 테이스팅 세션 멤버들입니다. 즐겁게 시음하고 날카롭게 평가하는 고수의 아우라를 온몸으로 풍기시는 분들. 

시음 때마다 내주시는 의견들을 받아 적느라 사실 저는 정신이 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의도치 않았으나 진심으로 뱉어내는 쉰소리에 호탕하게 웃어주시는 분들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제 의도치 않았으나 진심으로 뱉어내는 쉰소리는 자제하려고 합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소절이라고.. 아무리 의도치 않았으나 진심으로 내뱉는.. 결과적으로는 쉰소리가 되는 불행한 경우라지만 더 하다가는 아픈 뇨자가 되어 버려 제명 당할 수도 있겠다는 뒤이은 후회 때문에 말이죠..

간혹 제 과도한 개그 욕심이 섬세한 테이스팅 시간에 독이 될 수 있음을 저도 모르지는 않는지라 워낙 중간없는 캐릭터인지라 나도 내가 컨트롤이 안 되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어느 순간 "자... 이제 그만!" 요런 분이 나오실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 전에 스스로 자제 모드.


이제 다시 가 봅시다! let's go~


남아공의 Rupert &Rothschild Baroness Nadine Chardonnay SA 2009.(루퍼트 &로칠드 바로니스 나딘 샤도네이 SA 2009.)

의도치 않으나 진심으로 뱉어내는 쉰소리가 쥐를 잡았다지요. 무식해서 용기있는 저는 망각도 빨라서 '마구 의견을 내면 나중에 틀릴 시 상당히 창피하다'를 매번 깨닫지만 또 매번 잊기도 해서 첫 와인에서 '그뤼너 벨트리너'를, 두번째 와인에서는 '마카베오'로 멤버들에게 연달아 웃음을 드렸고, 잠시 후 시간이 지나 "혹시 프랑스 유명 와이너리에서 신세계에 새로운 와이너리를 내는... 그러니까 루퍼트 &로칠드 처럼..." 요렇게 뱉었는데... 이런 경우가 당락을 좌우하는 한 문제의 시험 답안이었다면 저는 평생 이 와인을 마셨을 겁입니다.

이 와인에 저는 90점을. 그리고 멤버들의 평균 점수는 88.5점을 받아 4위를 한 와인이었습니다. 이 와인의 최고 점수로는 96점이 있었고, 최저 점수로는 82점이 있었지요. 최고 점수의 이유는 좋은 발란스와 긴 여운이 꼽혔으며, 최저 점수의 이유는 산도의 강도가 높아 발란스가 깨졌다는 표현과 더불어 여운은 기나 퀄리티에서 오는 여운은 아닐 것 같다는 의견. 재밌지요?

보통 여성이 남성보다 산미에 더 호의적이라고 합니다. 특히 와인에 있어서 남성들이 이탈리아 와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산도 때문이라고도 하는데요, 정말 재미있게도 최고 점수와 최저 점수는 각각 여성과 남성의 점수였다는 것. 이에 멤버들은 "음, 남자야!" 하면서 엄지 척!

재미삼아 제 느낌은... 거대 자본을 가진 와이너리에서 만들어진 와인이어서 그럴까요? 저는 뭔지 확실치는 않으나 "이렇게 만들면 잘 팔릴거야..." 하는 생각으로 트렌드를 충분히 반영한 기획 상품 같다는 느낌? 어쩌면 이런 느낌 때문에 '소 뒷걸음 치다가 쥐잡은’ 듯한 말을 내뱉었는지도 모르구요. 

신선한 산도와 풍부한 과일향. 오크 숙성에서 오는 섬세하게 풍기는 견과류의 향에 긴 여운까지. 가벼운 맛이지만 풍성한 향이 만들어내는 과하지 않은 복합미. 차게 마시면 싱그럽고 시원하게 마실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피어 오르는 다양한 아로마. 여튼 현대인들의 취향에 딱 맞춤해서 만들어 낸 기획 상품 같은 그런 느낌? 물론... 이 의견은 재미삼아...입니다.


자,.. 이제 정말 특이하고, 정말 낯설어서 진행자가 "위험합니다." 하는 주의를 주었던 와인을 보실까요? 여섯번 째 와인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의 Kistler Sonoma Mt. Chardonnay 2009.(키슬러 소노마 마운틴 샤도네이 2009.)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재밌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 와인은 7등을 했어요. 총 8병 중에 7등. 사실 와인 하나가 부쇼네가 나서 순위에서 빼 버렸으니 꼴등이나 다름없죠. 슬슬 멤버들의 점수가 공개가 되자 서브되는 와인의 순서와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 단 분이 "위험합니다."라는 경고성 멘트를 날립니다. 그러나 이미 결과는 나와있는 상태. 

그리고 더 재밌는 사실은 1등을 한 와인과 비교해 보자면, 1등을 한 호주의 핸드픽트. 이 와인의 가격은 85,000원. 저렴하기로 따진다면 세 번째로 저렴했었구요. 꼴등이나 다름없는 7등을 한 키슬러. 이 와인의 가격은 240,000원. 가장 고가의 와인이었답니다. 

자,.. 이럼 이 와인이 왜 평균 87.4점을 받았는지 살펴보니 결과는 이렇습니다. 낮은 점수를 준 멤버들의 의견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는 "쓴맛"이었지요. 쓰다는 표현이 밤꿀향이라고도 표현이 되었고, 로스팅 커피라는 의견도 있었구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 와인이 마치 누룽지 숭늉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드럽고 구수한 향으로 마시다가 끝맛으로 남는 살짝 탄 듯한 냄새. 저는 이 냄새를 '쓰다'라고 느꼈습니다. 후에 이런 의견들을 나누면서 이 '쓴' 맛이 이 와인의 특징이고, 이 특징으로 비싼 몸값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 이것은 순전히 제 주관적 의견입니다만 이 와인은 제게 '익숙하지 않았다.' 였습니다. 살짝 부끄러운 고백으로 들어가 보면 저는 1등한 핸드픽트에 역시나 가장 최고점을 줬구요. 그리고 꼴등을 한 이 와인에는 저 역시도 가장 낮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 와인이 평점 87.4를 받은 이유에는 제 점수의 영향이 컸다는....(아! 1등 와인에는 제 점수의 영향이 거의 없음요..)

며칠 전, 제가 듣는 팟 캐스트 방송의 주제가 '진보는 원래 진다. 결정적인 순간 한 번만 이긴다.'였는데 제게 있어서 늘 경험하는 익숙한 것에 점수를 더 주는 것은 와인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이런 결과를 보고 나니 과연 제게 있어서 낯설지만 결정적인 한 방으로 다가오는 매력적인 와인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는 걸까요?


일곱번 째 와인을 봅니다.. 이제 거의 끝입니다. 저도 좀 고된 느낌이...


아르헨티나 멘도자의 Dona Paula Estate Chardonnay.(도나 파울라 에스테이트 샤도네이). 평균 점수 88점으로 5등한 와인입니다. 전체적으로 산도가 높다는 의견이 있었던 반면에 높은 산도가 발란스의 여러 요소를 잘 컨트롤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복합적이기 보다 단순한 느낌이지만 긴 여운에 좋은 느낌을 갖는다는 의견과 더불어 와인의 스케일은 작지만 구조감이 오목조목하고 예쁘장한 와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별 특징이 없는 평범한 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점수는 89점.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Domaine Latour Giraud Meursault 1er Cru Genevrieres(도멘 라뚜르 지호, 뫼르소 프르미에 크뤼 '즈느브리에르'.). 

프랑스 뫼르소. 이 와인을 네이버 지식 검색으로 찾아보니 어울리는 음식이 달랑 '한식'이네요. 외국인이 보면 '한식'은 음식의 이름인 줄 알겠어요. 이 와인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큰 공부가 됐던 와인이구요. 

처음 마시는데 냄새가 남다릅니다. 뭔가 두꺼운 느낌에 오래된 찐 밤 냄새가 사정없이 나며, 한 모금 마시고 넘겨보니 여운이 딱 2초 갑니다. 그리고 끝! 역시 와인을 많이 접해 본 고수는 다릅니다. 바로 "부쇼네!" 가 나오네요. 저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전 와인의 낯선 느낌으로 위험한 점수를 준 전과도 있고한지라 '이것은 분명 굉장한 와인인데 내가 접하지 못한 낯선 느낌일거야.. 강렬한 향과 짧은 피니시로 독특한 임팩트를 주는 게 아닐까?' 하며 짱구를 잠시 굴려 보았지요. 

부쇼네... 처음 접해 봅니다. 그리고 저는 와인이 어떤 이유로든지 상하면 신맛이 날 것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아니면 무미하든가...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아련히 남아있는 과일향이 존재하기는 하더군요. 그리고 오래된 찐 밤 냄새 같은 그 두꺼운 냄새는 계속 맡다보니 쉐리같은 느낌도 생기더라는...

결국 뫼르소는 점수를 줄 수 없었구요. 제게 이 와인은 부쇼네를 처녀 체험하게 한 귀한 와인이 되었답니다. 이어서 제대로 된 녀석으로 업어오고 싶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떼샷 나갑니다.


샤도네이는 세계 여러 곳에서 많이 심어지고, 따라서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화이트 와인입니다. 흔한 와인이지만 어떤 환경에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와인의 개성은 천차만별입니다. 이번 주제를 선택해 주신 분은 교과서에서 글로 배우는 나라별 샤도네의 특징이 과연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이번 주제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다양하다.

오크 친화력이 좋은 포도 종이니만큼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철학과 스타일에 따라 독특한 개성으로 태어나는 샤도네이. 개성이 다른 샤도네이를 다양한 사람들과 각각 다른 이유와 분위기에서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캐릭터가 더해지겠지요. 같은 종류의 포도종이 만드는 사람에 의해서 다른 개성을 가진 각각의 와인이 되는 것처럼 같은 와인을 마시더라도 그 사람의 경험과 인생에 따라서 또 다른 이미지를 가진 와인으로 탄생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 그 와인 마셔봤어"라고 말하기 보다는 "나, 그 와인 누구랑 언제 마셔봤어."라고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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