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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회 테이스팅 세션 - 와인 마시는데도 공부가 필요합니까? 본문

테이스팅 세션

제 10회 테이스팅 세션 - 와인 마시는데도 공부가 필요합니까?

와인비전 2013. 4. 26. 16:00

즐거운 글을 쓰는 村筆婦 백경화


대학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되지요. 바로 수강 신청하기. 전교생이 똑같이 짜여진 시간표로 공부하던 때와 달리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내가 직접 골라서 들을 수 있는, 실로 수입 아이스크림스러운 일상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흥분. 

1학년은 어떤 학년보다 전공 필수, 교양 필수 수업이 많아서 고 3 시간표의 양 싸다구를 후려치고도 남을 시간표였기에 선택할 수 있던 과목은 몇 개가 안 됐었죠. 그 와중에 꼭 붙어 다니고 싶었던 친구가 반드시 듣고 싶다고 했던 '문학 감상법'. 진정 그 수업이 듣고 싶은지를 몇 번을 물었지요. 정말 수업 제목도 구리다... '문학 감상법' 뭐냐고 타박을 주고, 문학을 감상하는데 무슨 '법'이 필요하냐, 교보나 영풍가서 쭈구리고 않아서 읽다보면 '감상법'이 생긴다며 면박도 했지만 그녀의 선택을 돌릴 수가 없어 결국 그녀와는 다른 길을 갔지요.

이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스무 살의 혈기 왕성하고, 뭐든 하면 될 것 같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청춘에게 선배들이 먼저 경험한 노하우의 정리들은 참으로 거추장스럽게만 보인다 이겁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깨지면서 얻게 되는 체험적 지식이야 말로 최고라는 생각. 좋게 말하면 도전과 패기. 하지만 돌려 말하자면 살짝 유치한 무모함.

하지만 세상 경험도 쌓이고, 내가 체험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난 어떤 시점이 되면 주관적일 것만 같던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과 언어를 포함한 실용 학문을 대할 때에도 일정하게 지속되는 패턴을 공부하는 것과 더불어 선배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쓸데없게만 보였던 이론은 결국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표지와 같은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선(先) 경험된 나의 체험이 더해지면서 내가 갖게 될 지식의 시너지는 무궁무진 할 겁니다.


인동차(忍冬茶)

                                                       정지용


老主人(노주인)의 腸壁(장벽)에

無時(무시)로 忍冬(인동)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 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깐 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山中에 冊曆(책력)도 없이

三冬(삼동)이 하이얗다.


'향수'라는 시로 아주 유명한 시인 정지용. 그가 쓴 '인동차'는 '향수'와는 그 분위기나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생각이 아주 다릅니다. 아마도 작가의 이름을 지우고 두 시를 나란히 놓는다면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힘들겠지요. 

그런데 정지용이라는 작가를 가만히 연구하다 보면 그의 시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정적이고 지적인  이미지들의 공통점들과 우리 말 어휘가 갖는 리듬감을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에 맞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의 삶에 대한 연구가 더해지면 그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의 폭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집니다.

좋은 작품은 겉으로 느껴지는 표면적인 감상뿐만 아니라 곱씹어 낼수록 은근하게 인간 본연의 감수성을 끊임없이 피어오르게 합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명작이라고 인정받는 작품들은 나이가 들어 다시 들춰 보면 볼수록 개인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 달라지고 깊어지면서 작품의 가치는 더 높아지지요.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다음 세대들이 문학을 감상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이것과는 다른 파격을 낳게 하는 모체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문학을 비롯한 인물, 예술, 그리고 실 경험이 중요하다고 모두들 말하는 와인에 대해서까지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이론과 선배들의 경험을 공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답니다. 개인적인 입맛이나 취향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와인이기 때문에 굳이 머리 아프게 공부할 필요 없으니 일단 많이 마셔보세요. 하는 많은 말들. 이 말이 틀렸다고는 말씀을 드리진 못하겠지만 일단 많이 마셔보고 나서 뭔가 그간의 한계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반드시 좀 더 발전 된 방향을 제시해 줄 멘토는 분명히 필요하다고 저는 얘기합니다. 그것이 꼭 '와인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과 같이 '와인마저도'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Chateau Ste. Michelle, Columbia Valley Riesling 2010.


Villa Maria, Private Bin Sauvignon Blanc 2011.

 

Dinastia Vivanco, Crianza 2008.


Allegrini, Palazzo Della Torre 2008.


Dona Paula Estate Malbec 2010.

 

Two Hands, Bella's Garden Shiraz 2009.


Araujo, Eisele Vineyard Cabernet Sauvignon 2008.


Renzo Masi, Fattoria di Basciano Chianti Riserva 2008.


유난히 위대한 샷(?)으로 올려 찍은 8 병의 와인들. 이것들은 모두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각각 다른 품종의 와인들입니다.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선정한 와인이기 때문에 꼭 훌륭한 와인일 것이라는 보장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많은 와인들 중에서 전문가 그룹이 뽑아 낸 와인이라는 데 의의를 둘 수 있지요. 와인은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개인의 호불호가 나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적어도 이 와인은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와인을 즐기는 재미는 더 커지지 않을까요?


테이스팅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이거 뭐지?" 와 "이게 그 품종이라구?" 하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테이스팅에서 제일 결과가 궁금했던 와인은 알레그레니, 팔라조 델라 토레(Allegrini, Palazzo Della Torre 2008). 베이비 아마로네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 와인은 포도의 70%는 수확 후 바로 발효과정에 들어가고, 나머지 30%는 12월 말까지 말려서 한번 숙성된 와인에 다시 한번 말린 건포도로 만든 와인을 첨가하여 2차 숙성을 진행시켜 맛과 향을 깊게 한다는 군요. 그 결과 더스티함, 흙설탕, 커피, 잘 익은 검은 과실, 부드러운 탄닌과 높은 산도. 중간 이상의 바디감을 가진 와인이 탄생되지요. 이런 양조 과정을 알고 난 후 이 와인에 대한 가치는 당연히 더 높아질 수 밖에 없고, 다시 한 번 맛을 '감상'하고 싶어지는 와인이 되더군요. 물론 이후 와인을 마셨을 때 처음보다 감동이 훨씬 크겠지요. 


그리고 첫 인상이 정말 좋았던 Chateau Ste. Michelle, Columbia Valley Riesling 2010.

가볍고 달콤하게 느껴지던 첫 느낌. 입 안에서는 꽃향기와 꿀향기가 도드라졌지만 향기에서의 달큰함과는 다르게 끈적이지 않고 산뜻하게 느껴졌던 바디감. 시원하게 칠링해서 마시면 매우 경쾌한 와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품종은 리슬링으로 예상. 하지만 리슬링 특유의 패트롤 향을 느낄 수 없어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요. 

결과를 열어 보니 이 와인의 산지는 리슬링의 고전적 산지로 알고 있었던 독일이나 프랑스 알자스가 아니었지요. 미국 콜롬비아 밸리에서 리슬링이 나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미 리슬링이란 품종에 대한 배경 지식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나 알 수 있는 낯선 산지의 와인에게서 느끼는 신선한 충격. 이 와인을 시음한 후 이야기 된 공통된 의견은 리슬링 슈페트레제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산도가 좀 낮은 것 같기도 하다는 발언들. 정체를 알기 전 이러한 의심들의 생성이나 정체를 알고 나서 아하! 하며 무릎을 칠 수 있는 희열. 이런 것들도 와인을 즐기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들이지요. 


그리고 Chateau Ste. Michelle, Columbia Valley Riesling 2010.과는 다른 스타일이었던 Villa Maria, Private Bin Sauvignon Blanc 2011.

사진으로도 보이는 반짝임들.. 저것으로 산도를 느끼실 수 있으시길... 쇼비뇽 블랑은 차게 마시는 여름 와인으로는 항상 갑!이라고 생각합니다. 톡 쏘면서 강하게 비강을 때려주는 새콤한 향으로 이미 더위 안녕~ 특히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의 경우 이런 자극들이 루와르의 쇼비뇽 블랑보다 강한 편인데 이 와인의 경우는 좀 순하게 느껴졌답니다.

아직 덜 여문 듯한 과일의 새콤한 맛. 구즈베리향이라고 이야기 되는 쇼비뇽 블랑의 특징적인 향과 분명히 강렬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산미가 유순한 바디감.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뉴질랜드의 와인 양조 방법이 요즘은 점차 부드러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포도 과육을 살짝 건조 시킨 뒤 양조 과정을 거친다는 디나스티아의 양조 방법에 따라서 생산된 Dinastia Vivanco, Crianza 2008.

이렇게나 맑은 외관을 하고 있지만 16개월 동안의 오크 숙성을 통해 만들어진 와인은 템프라니요 품종이 갖는 붉은 과일향과 더불어 흙향, 가죽향, 삼나무 향의 복합적인 향과 더불어 산도와 탄닌의 밸런스를 갖춘 훌륭한 구조감을 지녔습니다. 


Dona Paula Estate Malbec 2010.

개인적으로 말벡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포도 품종이고, 단 한 번 기분 좋게 마셨던 것은 이스카이 정도.  놀라운 것은 앞선 두 개의 레드 와인과 비교할 때 가장 높은 점수였다는 것. 나도 돈나 파울라 말벡에 89점을 줬고, 평균은 89.1 점이었다는 사실. 


이쯤에서 점수를 정리해 보자면, 

첫 번 째 화이트 와인인 콜롬비아 밸리의 리슬링은 평균 85.5(내 점수는 90.).

두 번 째 화이트 와인인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은 평균 87.8(내 점수는 90.).

그리고 레드 와인 1번, 디나스티아 크리엔자는 평균 87.5(내 점수 87.)

레드 2번, 알레그리니는 평균 88.4(내 점수 86.).

그리고 레드 3번이 바로 돈나 파울라 말벡. 살짝 단맛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여운이 길게 유지된다는 특징이 있더군요. 


그리고 문제의 와인.. Two Hands, Bella's Garden Shiraz 2009.

평균점수는 88.9. 내 점수는 88. 호주의 쉬라즈 100% 와인으로 WS와 RP 90점 이상을 꾸준히 받아 온 와인입니다. 

재밌는 사건은 와인을 준비한 분께서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와인을 서브 해 주시는 분이 이 와인 이후의 와인은 계량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잔에 붓듯이 와인을 서브 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반응에 부화뇌동한 저는 순간적으로 직접 관리하는 회비의 예산을 떠올리며 얍삽한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으니,

'이 와인이 오늘의 최고의 와인이며, 다음부터는 쭉정이구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하게 느껴졌던 탄닌의 탓으로 발란스가 좀 무너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또 들었던 생각은 예산에 대한 고려. 

‘한 와인에 올인을 했다고 해도 역시나 경제적 한계를 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군…’


농축된 과일향으로 강한 인텐시티를 주었던 것은 사실이나 뭔가 좀 빠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다음으로 나왔던 Araujo, Eisele Vineyard Cabernet Sauvignon 2008.을 마시고 난 후, 아,.. 이래서 카버네 쇼비뇽이 최고의 레드 와인 품종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컬러감으로도 느껴지는 좀 더 진중하고, 묵직한 느낌. 평균 점수 92.9. 제 점수는 94점 입니다. 이날 와인들은 모두 WS의 평가로 90점을 받았던 와인들. 하지만 이 와인은 97점을 받은 와인입니다. 

미국의 5대 컬트 와인 중 하나인 Araujo. 이번 테이스팅 주제를 기획했던 분은 "이거네!" 하시더군요. 그러면 예산 금액을 머릿속으로 짱구 굴리며 경제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으로 예상했던 저는 일순간 혼란이...

분명한 것은 90점 와인과 97점의 점수를 받은 와인은 확실히 스케일이 다르다는 것과 일단 와인에서 풍겨 나오는 향이 이제껏 나왔던 와인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향기롭고 다채로웠다는 점은 분명히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탄닌과 산도의 발란스도 좋았고 여운과 복합성은 끝나지 않을 듯한 느낌으로 뭔가 계속 변화하면서 즐거운 기대감을 주었다는 점 등이 저 스스로도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었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와인을 접하는 첫 경험이었는데 말벡의 첫 느낌이었던 달큰함과는 다르게 뒷맛으로 남은 단 향이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더군요. 그래서 한 번 다시 마셔 볼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되는 와인이었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산화되어서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없었던 Renzo Masi, Fattoria di Basciano Chianti Riserva 2008. 

겉은 멀쩡하나 이미 향에서부터 "아.. 쉐리향이 나..." 이런 반응을 이끌어 냈던 와인입니다. 그리고 산화된 와인은 확실히 여운이 뚝! 사실 여운이란 것도 없이 와인을 삼키자마자 잔향도 없이 모든 잔상이 사라집니다. 


전문가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서 이 와인들에게 좋은 점수를 주었을 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와인들은 그 자체로 갖고 있던 잠재력에 Wine Spectator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와인이라는 가치를 더 가질 겁니다. 그 가치는 시장에서는 가격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면서 소비자들에게는 그닥 반갑지만은 않은 반응을 불러 일으킬 것이지만 적어도 이 와인의 스토리를 알고 마시는 사람의 경우 좀 더 집중해서 이 와인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겠지요, 모르는 사람과는 다르게. 즉, 같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무엇을 더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까의 문제로 결론 낼 수 있겠네요.

혹시 유난히 맛있게 마셨던 와인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진 와인이고, 어떤 평가를 받는 와인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어쩌면 당신이 좋아하는 와인은 당신을 더 큰 매력으로 이끌 수 있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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