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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 고운 이름 모를 와인 - 앙주의 로제, 로제 당쥬(Rose d'Ange) 본문
프랑스 앙제(Angers)라는 작은 도시에서 유학 생활할 때였습니다. 쌩땅뚜안(St. Antoine)이라는 작은 성당의 프랑스 신부님으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저녁 식사 초대는 굉장히 큰 의미라고 생각했고, 간만에 정말 포식하겠구나 생각하면서 빈 손으로 가는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대형 마트에 들러 와인을 사가기로 맘먹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와인 코너를 헤매다가 적당한 가격의 로제 와인을 한 병 골랐습니다. 와인에는 레드와 화이트만 있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빛깔 고운 로제 와인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충격을 좀 더 느끼고 싶어 한 병 더 챙겼습니다.
신부님 댁에 도착하자 음식 냄새가 진동할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식사할 줄 알고 기대했던 제 잘못이죠. 허기진 배를 신부님이 내주신 쉐리 와인 한 잔과 짭쪼름한 땅콩으로 달랬습니다. 담소를 나누고 나서 부엌으로 이동했습니다. 신부님께서 냉장고 문을 열더니 커다란 접시를 꺼내셨습니다. 샐러드였습니다. 정말 배가 많이 고팠기에 샐러드 밑에 깔린 드레싱까지 빵으로 싹싹 닦아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베인 신부님의 저녁 식탁은 그렇게 끝이 났고, 집에 돌아온 저는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서 남은 로제 와인 한 병을 열어 함께 마셨습니다. 매콤한 라면과 상큼하고 시원한 로제 와인의 조화...나쁘지 않았던 호사스런 기억들 중 하나로 남습니다.
※ 사진은 본 내용에 등장하는 로제와인이 아닙니다.
<삼청동 쉐 시몽(Chez Simon) 오너 쉐프 심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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