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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추억

와인비전 WSET 와인비전 2014. 5. 14. 13:25

'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당신의 머리에 즉각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진眞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참으로 된 사람이다. 진리를 탐구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당신은 진짜로 훌륭한 인간임에 틀리없다.

 

그게 아니라면, 진(blue jeans)이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로 멋진 사람이다. 청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당신의 모습은 아주 당ㅇ하고 매무새가 절로 날것에 틀림없다.

 

그도 저도 아니면 진라면이 떠오르는가? 아니면 진에어? 가수 진?

배가 고파서든지, 여행을 좋아하든지 아니면 노래를 사랑하든지 간에 사람마다 제 각각 머리에 떠올리는 대상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진Gin이다. 드라이 진으로 더 알려진 술 진은 무색의 별다른 특징이 없는 뉴트럴 스피릿Neutral Spirit에 다양한 종류의 보태니Botanical향을 입혀 만든 것이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진의 유일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보태니컬은 주니퍼juniper berry다. 주니퍼 베리는 진에 헤더와 라벤더 향, 그리고 독특한 솔 향기를 제공한다. 실은 무엇보다도 이 소나무 냄새가 진의 특성이다.


내가 진을 언제 처음 접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에 관해 떠오르는 가장 오래 전의 추억은 30여년 전의 서강대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여름은 아니었고 분명 6월경의 초여름 날이었는데 당시 종교학과 교수였던 사이몬Simon 신부님 주거공간이자 연구실인 사제관에 속해있는 식당에서였다. 이 신부님은 더워하는 나에게 음료수 한잔을 손수 타 주셨다. 

 

보통 사용하는 맥주잔보다 높이가 있는 하이볼 잔에 육각 얼음이 박혀있고 샛노란 레몬을 슬라이스로 잘라 등등 띄운 약간 흐릿한 무색 음료수였다. 지금도 아스라이 전해오는 그 음료의 첫 느낌은 쓴맛이 감도는 쌉쌀함에 레몬의 향기와 소나무향이 잔잔히 배어나오는 산뜻하고 칼칼한 맛이었다. 상큼하고 깔끔하여 입안이 맑아지고 한 순간에 코가 뻥 뚫리는 개운한 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음료였다.

 

그렇다.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로 회자되는 진토닉Gin and Tonic과의 만남이었다. 


강산이 세 번도 더 바뀐 지난 일이지만 진토닉 만드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가정하고 기억을 되살려보면 상황은 이렇다. 


"진 토닉이야. 내가 미국 유학 시절에 많이 만들어 마시던 술이지."


신부님께서는 어느새 만들어 나부터 한잔 권하시고는 본인 잔에 얼음을 넣으면서 말씀하셨다. 


"잔에 먼저 얼음을 몇 개 채우고 드라이 진을 대충 1온스 정도 넣지. 박원장은 술이 세니 더 넣어도 되지만..."

 

전부터 내가 더 강한 척 했지만 물론 술은 이신부님이 더 세다.


"그 다음에 레몬을 조금 짜 넣어주고 나서 그 위에 토닉워터를 잔에 8부 정도 채워준 후 살짝 저어야해. 얼음을 흔드는 정도로만 살짝..."


시몬 신부님은 익숙한 솜씨로 다시 한잔을 더 만드신 후에 테이블로 가져와 무언가 조금 미진한듯이 한 말씀 덧붙이셨다.


"라임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만 없을 경우 레몬으로 대신해도 돼요."


난 그 때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 가지는 몰랐었다.


알게 된 사실들 : 칵테일은 바에서 전문 바텐더만 만들도록 허가된 나라 법은 없으므로 집에서 우리도 얼마든지 제조할 수 있다는 것과 레몬이나 라임과 섞이면 진의 특유한 소나무향이 약해지면서 쌉쌀하고 상큼해진다는 것.


그 당시는 아직 몰랐던 사실 : 그로부터 20여년 후에 내가 전문 바텐더 자격증을 소지하게 되리라는 것.


아무튼 나에게 있어서 진과의 첫 만남-가만 생각하면 처음이 아님은 분명하다-은 칵테일의 주재료로서의 진이었지 단독으로 진만을 접한 것은 아니었다.


네덜란드의 닥터 실비우스가 처음 제조했다고 알려진 진 이전의 진은 이탈리아에서 가져 온 주니퍼 베리juniper berry로 만들던 만병통치용 '토닉'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같은 나라의 사업가 볼스가 증류공장을 설립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의 특산물이 되었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난 즈음인 1689년 영국의 국왕이 된 윌리엄 오렌지William of Orange(그가 취임해서 제일 먼저 취한 결정 중 하나가 프랑스에 대한 선전포고였다.)는 진의 증류를 장려하였고 그로 인해 영국은 마담 주네버Madam Genever(진Gin)에 취해 비틀거리게 되었다. 초창기 주니퍼를 많이 넣고 단식 증류를 통해 제조한 형편없는 옥수수 스피릿에 당을 첨가해 달달하게 만들던 영국이 1803년 달지 않은dry(unsweetened) 새로운 스타일 진을 개발하고 마침내 이 런던 드라이 진 London Dry Gin은 영국의 국주가 되었으며 미국으로 수출도 무척 많이 이루어졌다. 가볍고 투명한 진은 새로운 열풍이 불고 있던 칵테일을 제조하는데 완벽한 요소로 미국 바텐더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은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싹을 튀우고, 영국이 잘 키웠으며, 미국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웠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와인 스피릿 상식

EU법규에 따라 진은 농작물을 기반으로 만든 최소 96%ABV의 무색무미무취의 특성이 없는 스피릿에 향을 입힌 것이다. 코리앤더 씨나 안젤리카 뿌리등 여러 식물의 향이 들어가지만 주니퍼의 향이 압도적이어야 하고 천연향(또는 천연향으로 인정할만한 것)이어야 한다. 진은 병입하기까지 아무런 숙성도 하지않으며 탈염수나 샘물을 이용해 병에 담기에 좋은 도수로 낮춘다.


-와인 스피릿과 함께하는 박정용 대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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