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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와인은 고기, 화이트 와인은 생선. 이 공식(?)은 절대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와인과 음식의 무난한 매칭을 이룰 수 있는 조합입니다. 와인과 음식의 매칭은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조리 방법이나 사용하는 양념에 따라 달라지곤 합니다. 때때로 뜻밖의 매칭을 이루는 경우도 있곤 있죠. 예를 들어 돼지고기에는 오크 처리를 한 일부 이태리 토착 화이트 와인이 잘 맞고, 참치 머릿살에는 피노 누아나 보졸레가 맞기도 하죠. 하지만 대부분의 고기 요리는 레드 와인과, 대부분의 생선 요리는 화이트 와인과 먹으면 큰 무리 없이 어울립니다. 그런데 육류와 채소류가 뒤섞여있는 요리는 어느 와인과 먹어야 할까요? 그리고 와인은 한 병만 마셔야 하는데, 고기 요리와 채소 요리가 함께 나온 자리에는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
스페인의 주정강화와인으로 잘 알려진 "Jerez-Xérès-Sherry"(셰리)는 스페인 남부의 카디스 주에 있는 세 도시인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Jerez de la Frontera), 엘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El Puerto de Santa María), 산루카 데 바라메다(Sanlúcar de Barrameda)에서 생산됩니다. 스페인에서는 짧게 헤레스라고 부르고, 영국인들은 이를 셰리라고 부릅니다. 셰리는 스페인의 토착 품종인 팔로미노(Palomino)라는 청포도로 만듭니다. 눈부시게 하얀 알바리사(albariza) 백악질 토양은 알칼리성으로 포도의 산도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배수성과 보수력이 좋습니다. '프랑스에 샴페인이 있다면 스페인에 셰리가 있다'고 할 만큼 이 두 와인은 각 지역의 ..
며칠 전,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영화 속 주인공이 와인을 병째 들고 마시는 장면에서 '음~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습니다. 결국 그 욕구는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 근처 대형 마트 와인코너를 기웃거리게 만들었죠.이 와인 저 와인 구경을 하다가 눈에 띈 녀석은 미국 오레곤에서 생산된 킹스 릿지 오레곤 피노 누아(Kings Ridge Oregon Pinot Noir)였습니다. 하얀색 바탕에 적갈색 글씨의 레이블은 마치 하얀 눈위에 붉은 핏자국처럼 이미지화되어 영화의 잔상처럼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킹스 릿지 피노 누아는 미국의 와인 생산지 중 가장 피노 누아에 적합한 테루아를 갖춘 오레곤 지역 출신답게 품격 있는 풍미를 ..
샴페인이 안 어울리는 때가 있겠냐만 여유로운 휴가지에서의 한 순간은 샴페인이 채워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요.로랑 페리에(Laurent - Perrier)는 산미와 과일 향의 조화와 조밀하고 파워풀한 버블, 가벼운 바디감에 단단하고 샤프한 스타일의 샴페인으로 제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샴페인인데요, 더위를 피해 가실 여러분의 여름 휴가지에서의 필수품으로 추천하는 와인입니다.저 역시 이번 휴가 때 마셨던 샴페인이었고, 마침 시원하게 한차례 소나기까지 내려서 '소나기, 잠깐의 여유. 그리고 샴페인'이라는 3박자가 맞는 듯 살짝 낭만적인 기분이 들기도 했었지요. 좋은 샴페인과 함께 여러분의 휴가도 기분 좋은 기억을 남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몇 일전 필리뽀나의 앙투앙 드 보이슨 마케팅 이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끌로 드 고아세(Clos des Goisses)는 주변 포도밭보다 온도가 1.5도가 높다.”며 필리뽀나는 ‘샹파뉴에서 가장 뜨거운(Hot) 포도밭’이라고 얘기했습니다.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포도밭 중 하나로 뽑히는 ‘끌로 드 고아쎄’는 1935년부터 최고의 싱글 빈야드 샴페인을 생산해 오는 필리뽀나의 크랑 퀴리급 밭입니다. 주변 온도보다 1.5도가 높으면 포도는 더 잘 익고 풍부해집니다. 밤낮의 기온 차가 커서 크리스피한 산미가 나오며 풍부한 풍미를 충분히 커버하지요.필리뽀나의 양조철학은 단순합니다. 뛰어난 포도를 가지고 있으니 떼루아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그는 “좋은 포도로 좋은 에이징을 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몇 주 동안은 알자스의 Clos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알자스에는 Kaefferkopf를 마지막으로 51개의 그랑 크뤼가 지정되어 있지만, 그랑 크뤼보다 더 그랑 크뤼 같은 몇 가지 와인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10ha 내의 작은 포도밭에서 각각의 품종에서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고 최상의 와인을 만들어내는데 이를 Clos라고 부릅니다. 오늘 추천할 Clos는 알자스 리슬리 중 최고의 숙성 잠재력을 보여주는 Clos Ste-Hune입니다.Clos Ste-Hune은 Trimbach에서 생산하는 최상급 와인으로 1.67ha의 작은 밭에서 포도나무 수령 50년 이상 되는 고목에서 최상의 리슬링 뀌베로 생산됩니다. 와인은 당도가 거의 없을 정도로 발효시켜 아주 드라이한 맛이 일품이며, 응축감 있는 과실 풍미..
생선회와 어울리는 와인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라면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들을 들 수 있을 겁니다. 프랑스 루아르의 상세르나 뿌이 퓌메, 뉴질랜드의 말보로 소비뇽 블랑이 모두 생선회와 잘 어울리며, 칠레산 소비뇽 블랑 와인도 가격을 생각해보면 꽤 알찬 맛을 보여주지요. 하지만 늘 소비뇽 블랑만 마시면 좀 지루하지 않겠습니까? 소비뇽 블랑 말고도 생선회와 어울리는 와인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 부르고뉴의 샤블리나 호주 에덴 밸리의 드라이 리슬링, 루아르의 뮈스까데 같은 와인들도 생선회나 생선 요리와 잘 맞는 편입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도 생선회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 나옵니다. 바로 베르데호(Verdejo) 포도로 만들어 싱그러운 향과 새콤한 맛을 지닌 와인이죠. 비네도스 싱글..
이탈리아에는 350개 이상의 양조용 포도 품종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20개의 주요 와인 지역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포도 품종을 이용해 저마다 개성 있는 와인을 만들어냅니다. 엘리스 보나코르시 발 세라사 에트나 로쏘(Alice Bonaccorsi Val Cerasa Etna Rosso) DOC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토착 품종인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80%와 네렐로 카푸쵸(Nerello Cappuccio) 20%를 블렌딩해서 만듭니다. 처음 이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 했을 때는 피노 누아나 네비올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네렐로 마스칼레제 품종은 피노 누아와 네비올로를 섞어놓은 듯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었죠. 시칠리아에서는 이 품종으로 로제 와인도 만드는데 이 와인을 로사토..
오늘 소개할 와인은 지난 주 일본 여행을 가서 우연히 마시게 된 프랑스 보르도 오 메독 지역 와인, 페르모렝 드 빌조르쥬(Peyremorin de Villegeorge)입니다. 환율탓도 있겠지만, 소매점에서 2만원 정도에 오 메독 와인을 구할 수 있다는데 흥분한 나머지 그대로 질렀습니다. 코르크를 오픈하고 테이스팅을 했는데, 이건 마치 생전 처음 레드 와인을 맛 보았을 때 느꼈던 바로 그 시금털털한 맛이 밀려오는 겁니다. 이건 뭐지 잘못 골랐나?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으나,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기다림은 결국 또 다른 실망을 안겨줄 때도 있지만, 기다리는 동안에 얻는 설레임도 무시 못하죠. 마치 로또를 구입하고 번호가 발표될 때까지 1등에 당첨되는 상상을 하면서 므훗해하는 모습과 같다랄까요..
휴가 마지막 날 아쉬움을 달래며 쇠고기 구이와 함께 와인 한 잔을 마셔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는 다이어터니까 진짜 한 잔만 마시자는 다짐을 굳건히 했지요. 그러나 무릎을 꿇었습니다. 와인을 마신 입에 고기를 넣는 것은 성지를 훼손시키는 만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경쾌한 산도, 가볍게 입 안을 감싸고 도는 부드러운 질감, 신선한 허브향과 스파이시, 붉은 과일류의 달짝지근한 향에 더해지는 흙냄새, 나무 냄새와 육고기 냄새 등이 어우러지며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마치 "얇은 사 하이안 꼬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하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방점처럼 찍히는 짜르르한 탄닌(절대 투박하게 덥썩 들러붙지 않습니다.). 조금만 마셔야지 했던 건 공허한 다짐이었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알뜰하게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