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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와인은 보르도의 아주 작은 아뻴라시온인 까농 프론삭(Canon Fronsac)의 와인입니다. 프론삭/까농 프론삭 지역은 생떼밀리온과 인접한 보르도 우안 지역인데, 18, 19세기까지는 보르도에서 높은 성가를 누렸으나 불행히도 지금은 메독과 생떼밀리온에 묻혀 일부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나 좀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저도 그동안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까농 프로삭을 방문하고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보르도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보르도 하고는 너무 다른 곳이었습니다. 우선 경치가 달랐습니다. 편평한 메독 지역과 달리 언덕들이 많고 힐사이드에 포도밭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유사한 곳을 생각해보니 투스카니 지역의 구릉이 떠올랐습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아주 작은 패밀..
친동생처럼 여기는 오래된 친구가 결혼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요." 라는 말을 노래 부르듯 하다가 누가 봐도 성실하고, 건강하고, 인상 좋은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신혼 여행 중에 사왔다며 바리바리 싸온 소품들을 내밀어 놓으며 "(신랑이랑) 결혼하게 돼서 너무 좋아요." 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데 마치 친동생을 시집 보낸 것처럼 마음이 뭉클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더군요. 결혼을 하면 그 동안 힘들게 다녔던 회사를 그만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가정 경제를 신랑에게만 맡겨 부담을 주는 것은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면서 "다닐 수 있을 때까지 회사를 다니겠어요" 하는 말과 함께 요래조래 살림을 꾸려가려고 한다는 계획을 듣고 있자니 새로운 인생..
보르도에 가서 점심시간에 시끌벅적한 식당에 가면 진한 색의 로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됩니다. 무슨 로제와인이 색이 이렇게 진한가 물으니 로제 와인이 아니라 보르도 끌레레랍니다. 겉보기에는 로제 와인과 많이 닮아 보이나 만드는 방식이나 풍미는 레드 와인에 오히려 가깝습니다. 로제 와인보다 훨씬 더 과일향이 강하고 바디감과 구조를 갖고 있죠. 그렇지만 레드 와인에 비해 훨씬 가볍고 부드럽습니다.로제 와인을 만드는 방식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끌레레는 레드 와인 메이킹과 방식이 같습니다. 단지 색깔과 타닌이 추출되는 스킨 컨택(skin contact) 기간을 레드 와인보다 훨씬 짧게 해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끌레레를 만드는 것이죠.끌레레의 역사는 오래 되어서 수세..
샤또 디켐이라고 하면 소테른 스위트 와인의 대명사라고 불려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고 퀄리티의 스위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고, 누구에게 물어봐도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테른 지역에도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디켐이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오늘은 생산량와 희귀도를 따졌을 때 샤또 디켐에 버금가는 와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아주 귀한 와인인 샤또 크림 드 떼뜨(Chateau Gilette Cream de Tete)를 소개 합니다. 크림 드 떼뜨는 귀부와인을 만드는 중에서도 가장 좋은 뀌베만을 사용하여 만들었을 때 붙이는 프리미엄의 다른 이름 입니다. 특히 현재 크림 드 떼뜨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와이너리는 루피악의 롱디롱과 소테른의 샤또 질렛만이 그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샤또 질렛의 ..
날씨가 아주 더워지고 있습니다. 이러면 더 이상 레드 와인은 선택 대상이 아니죠. 차갑게 마시기 힘든 레드 와인은 여름철의 술로는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확실히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가 땡기기는 하지만, 와인 중에도 여름철에 어울리는 와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탄산이 입안에 짜릿한 감각을 전해주는 스파클링 와인, 상쾌한 산미가 입맛을 돋워주는 화이트 와인, 그리고 연어색에서 주홍색까지 다채로운 색깔로 빛나며 여름철 피서지에 어울리는 로제 와인이 그런 와인들이죠.이제 날이 더 무더워지고 복날도 곧 다가올텐데요, '복날에는 개고기!'라고 하지만 많은 분들에겐 닭과 수박이 더 친숙한 음식일겁니다. 닭은 더운 여름철에 떨어지기 쉬운 체력을 보양해주고, 수박은 체온을 조절하면서 갈증을 해소해주기 때문에 더운 여름철 음..
조셉 두르엥 생뜨니(Joseph Drouhin SANTENAY). 조셉 두르엥도 처음이고, 생뜨니도 처음입니다. 여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웬만하면 집에서 와인을 마시는 일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그날 봤던 영화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어찌나 와인을 맛있게 마시던지. 여름에 대처하는 다이어터의 자세를 망각한 채 고기 주섬주섬, 와인 주섬주섬을 실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라 고기 양과 비스무리하게 채소도 구워먹을 양으로 큰 접시에 한 가득 버섯, 애호박, 아스파라거스, 가지, 파프리카, 양파 등을 담아냈죠. 그런데 이 와인, 여름 다이어터의 와인으로 손색이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깨끗하고 하늘거리는 듯 가벼운 바디감이 좋습니다. - 두껍고, 진한 질감의 와인은..
서울에서 좋은 샴페인을 마실 기회가 없다가 출장 중에 모처럼 훌륭한 샴페인을 만났습니다. 미셸 고네(Miche Gonet)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알고 보니 고급 샴페인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샴페인 프로듀서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형 샴페인 하우스의 샴페인은 대부분 포도를 재배하는 포도 경작자들에게서 포도를 구입하여 샴페인을 만드는데 반해 미셸 고네는 자기 포도 밭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만 사용해서 샴페인을 만드는 소위 재배 생산자(Grower Producer)입니다. 포도밭도 최고급 샤도네 밭들이 있는 꼬뜨 드 블랑의 아비즈(Avize), 오제르(Oger) 등에 집중되어 있죠. 생산량이 크지 않다 보니 아직 한국 시장에는 소개가 되지 않았더군요. 이번에 테이스팅한 것은 뀌베 프리스..
‘공부는 잘하니? 명문대 가야 성공하지!’ 한국의 한국인이면 누구나 초등학교부터 귀에 못박히게 들어오던 얘기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어쩌면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자연적으로 스펙에 연연하는 삶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짧고도 긴 고3 시절을 끝내고 1998년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군대를 갔다와 보니 세상은 팍팍해져 있었습니다. 취업하기도 쉽지 않았지요. 학교는 물론 과도 좋아야 되고, 토익점수가 없으면 안됩니다. 영어회화도 잘 해야지요. 그러고 보니 주변 사람이 다들 어학연수를 떠납니다. 교환학생을 가는 친구도 해외로 대학을 가는 친구들도 보입니다. 이력서에는 봉사활동을 적는 칸도 있습니다. 다시 다들 칸을 채우기 위해 봉사활동을 떠납니다. 입양아를 돕기도 하고, 국가기관에서 일하기도 하며, 다시 해외로 나..
쥐라 지역의 제일 유명한 와인을 하나 꼽으라면 뱅존을 들 수 있는데요, 그 중 샤또 살롱은 단연 으뜸으로 쳐줍니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뱅존은 사바냉이라는 품종으로 사용하는데 양조 방법 또한 독특합니다. 먼저 사바냉을 수확한 뒤 버건디 배럴에서 숙성시킵니다. 이때 일부러 산소와 효모를 노출시키게 되면 쉐리를 양조할 때 생기는 플로르라는 막이 생기는데요, 그렇게 6년 3개월 동안 배럴 숙성 후 병입합니다. 병입은 전통적으로 클라블랭이라는 620ml 사이즈의 작고 통통한 병을 사용하는데 샤또 살롱에게만 병에 각인을 새길 수 있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산화를 시킨 상태에서 오랜 시간 오크 숙성을 시키기 때문에 보관 또한 길게는 한달까지도 거뜬히 갈 수 있는 샤또 살롱. 어제 마신 도멘 베르테 본데 샤또 살롱(..
누구에게든 쥐약인 날이 있습니다. 저는 비 오는 날, 구름이 잔뜩 낀 날. 어쨌든 기압이 낮은 날에는 최악의 컨디션을 보입니다. 월요일, 화요일에 비 옴. 수요일은 두꺼운 구름이 손가락으로 찔릴 듯이 낮음. 이는 곧, '나를 찾지 말지어다.'의 날입니다. 몸은 기름을 다 짜낸 깨 쭉정이 같고, 반대로 신경은 날카롭고, 뭘 해도 억지로 하게 되니 이런 날은 다툼도 많습니다. 이런 날은 최소한의 동선에서 최대한 얌전하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첫사랑 와인이 있을 겁니다. 샤또 브란 깡뜨냑(Chateau Brane Cantenac)은 '와인은 보르도 와인이 가장 마실만 하대.' 하던 시절에 우연히 추천 받아 지금은 셀러에서 떨어뜨리지 않는 와인이 되었습니다. 이 와인을 마시고 향에..